[김수길의 워싱턴 에세이]탄핵재판 엄숙한 '역사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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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들으시오 (Hear ye) , 들으시오, 들으시오. 모두들 정숙하시오. 투옥 (投獄) 되지 않으려거든 (on pain of imprisonment) ."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 대한 미 상원의 재판은 2백여년 전의 고어 (古語) 를 의전관이 낭랑히 외치면서 시작됐다.

미 건국 초기에 작성됐고 1백30년 전인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 탄핵재판 때 딱 한번 쓰인 옛말이 7일 (현지시간) 오전 미 역사상 두번째로 상원에 울려 퍼진 것이다.

오후, 재판의 판사역할을 할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공화.민주 3명씩 상원의원 6명의 인도를 받으며 입장했다.

검은 법복의 양 소매에 4개씩 둘러쳐진 금줄은 그가 대법원장이 된 직후 법의 권위를 더욱 세우기 위한 표징으로 만든 것이었다.

상원의원 중 가장 연장자인 96세의 스트롬 서먼드 (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이 단상에서 대법원장을 맞아 선서를 인도했고, 이어 상원의원 1백명이 모두 일어서서 오른 손을 들고 대법원장이 인도하는 선서를 마친 후 한명 한명씩 앞으로 나가 '선서부' 에 서명했다.

서명을 위해 준비된 펜은 1백개. 의원 각자가 탄핵재판에 임하며 서명할 때 쓴 펜을 '역사적 펜' 으로 귀중히 보관하라는 것이다.

모두들 엄숙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시작된 이같은 재판과정은 대통령탄핵에 대한 역사의 무게와 법의 권위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 무게와 권위에도 불구하고 공화.민주의 당파적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증인소환 등을 놓고 진행절차마저 합의가 안돼 대법원장은 선서만 하고 바로 의회를 떠났다.

그러나 '옛말' '금줄' '1백개의 펜' 은 엄격한 3권분립제도가 한갓 당파싸움을 압도하고도 남을 '역사적 소품' 이었다.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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