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세이]재산 미리 나누는 러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알렉세이 바딤 (37) 은 노타리우스 (공증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법률가다.

모스크바대 법대를 나와 러시아 내무부에서 4년간 법률고문으로 근무했던 그가 93년 공증사무실을 차린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러시아에서는 임대차 계약이나 자동차 매매계약 등 모든 거래에 노타리우스의 공증서를 요구한다.

적게는 10여달러에서 많게는 수백달러까지 올라가는 공증료 때문에 바딤은 관리 시절보다 20~30배의 돈을 벌고 있다.

부인에게는 독일제 BMW 자동차를 사주고 자신도 폴크스바겐 파사트를 구입했을 뿐 아니라 모스크바 교외에 코타주라고 하는 서양식 3층 다차 (별장) 도 샀다.

지난 금요일 송년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혼예정 재산분할 공증' 이라는 신종 공증이 대유행이라 더 바빠졌다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 공증은 이혼시 재산분할에 관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 결혼 전에 미리 재산분할 원칙에 관한 공증을 해두는 것인데, '재산을 몇% 나눠주며 구체적으로는 이러이러한 것들을 준다' 는 약속이다.

바딤은 이런 공증을 하루 4~5건, 많으면 10여건까지 취급한다고 했다.

공증료는 천차만별. 옛 소련 시절엔 모든 게 국유재산이어서 남녀가 헤어질 때 그저 옷가방 한두개만 들고 떠나면 됐지만 사유재산이 늘어난 요즘에는 미리 재산 공증을 해두지 않을 경우 분쟁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청인 대부분은 '노브예 루스키' (신 러시아인) 로 불리는 신흥 부자들의 자식이나 재혼하는 노브예 루스키들이다.

바딤은 평균 이혼율 60%대인 러시아에선 이러한 유행이 확산될 것이 분명하며 큰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부인과 합의하에 얼마전에 재산분할 공증을 마쳤다고 멋쩍게 웃었다.

한국에서도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이를 먼 나라의 일만으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는 형편이다.

김석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