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스크린 쿼터제-폐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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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미투자협상에서 스크린 쿼터 (한국영화 의무상영) 의 폐지 내지 축소가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국내영화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1백46일에서 단 하루도 양보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폐지론에 동조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양측의 팽팽한 주장을 듣는다.

국가의 모든 것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 충언을 고한다.

차제에 방화관련 정책들도 전면 재검토하라. 그리고 그 첫번째 작업으로 스크린 쿼터제부터 폐지하라. 당장 어려우면 점차적으로라도 이를 철폐해야 한다.

스크린 쿼터제는 지난 66년 국내 영화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당시 총 90일 이상 국내 영화를 상영하도록 한 이 제도는 이후 그 일수가 점차 늘어나 현행 영화진흥법상 연간 1백46일간 방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오늘날 법정쿼터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스리랑카.파키스탄 등 전세계 11개국뿐이고 이들 가운데 한국이 가장 길다.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스크린 쿼터제를 이처럼 꿋꿋하게 지켜왔다는 사실만으로 관계당국은 할 바를 다했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제도를 실시한지 무려 32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다른 나라들과 격차를 그다지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스크린 쿼터제가 '양' 은 보장할 수 있을지언정 '질' 은 결코 담보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너무나도 오래 계속돼온 인위적인 보호망은 일부 국내 영화업자들을 타성에 젖게 하기에 충분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이들 일부 영화업자는 수준 이하의 영화를 만들어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했고, 법정 상영일수를 채워야 하는 극장주들은 텅빈 객석을 향해 영화를 돌려야 했다.

경영이 악화된 극장측은 급기야 방화 의무상영일수를 채우기 위한 각종 편법을 동원했고, 제작자들은 이같은 극장업계를 관계기관에 고발하는 등 악순환을 거듭했다.

이들 영화인에게 스크린 쿼터제는 더이상 자기발전을 위한 토대가 아니었다.

정부는 이 모든 추태의 원인이 된 제도를 과감하게 철폐하고,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하루 속히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제반규제 혁파를 골자로 한 방화산업진흥책을 수립해야한다.

무엇보다 의무 예탁금제 등을 폐지함으로써 영화제작의 완전 자유화를 실현해야 한다.

또 한국기술금융 등 벤처 금융회사들이 국내 영화산업에 대해 투자를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세제지원 등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오늘날 국제경제계를 주도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 (WTO) 는 특히 서비스 부문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제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정부는 영화산업진흥기금을 대폭 확충해 국내 영화인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할 것이다.

스크린 쿼터제의 폐지로 혹여 미국 직배사의 불공정한 배급체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배급상의 불공정 거래관행은 스크린 쿼터제가 아니라 공정거래법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엄격한 법집행을 통해 직배사의 불법행위를 척결하고, 필요하다면 미국측에 이 문제를 통상현안으로 강력히 제기해 그 해결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왕상한(서강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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