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되짚어보는 신간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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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이 시절 여자들이 몹시 아프다.

루소는 '에밀' 에서 '여자에게서 구속은 운명' 이라고 말했지만 따뜻해야 할 아내들의 가슴마저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아내.어머니를 소재로 한 소설.산문집이 쏟아지는 것은 다 그런 연유에서다.

소설가 전경린이 펴낸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문학동네.5천5백원) .그는 글머리에다 이런 의문부터 던져 놓는다.

"여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어느 먼 곳에서 와서 무릎을 꿇었기에 작은 몸 안에 그토록 많은 배반과 그리움이 술렁이는 것일까. " 나뭇꾼과 보름달 아래서 늑대로 변하는 한 여인의 사랑이 애절하다.

방송작가 김보정의 첫 소설 '아내' (밝은세상.1~2권.각 7천5백원) 는 바로 동시대의 고난을 담아낸다.

디자이너 서영과 연극 연출가 수혁과의 사랑은 아내의 사업실패로 결국 금이 간다.

두 사람의 방황과 그리움, 그리고 재회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다가선다.

소설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감각적 문체로 이어가는 서술이 돋보인다.

소설가 공지영이 30년 전의 식모 '봉순이 언니' (푸른숲.6천원) 를 떠올린 것 또한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다섯살짜리 짱아가 열세살 나이로 서울에 올라온 봉순이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은 자꾸 지난 날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짱아의 집은 '수직상승' 하는데 반해 봉순이는 결혼실패로 여전히 뿌리없는 삶을 꾸려야 할 뿐이다.

우리 경제 성장사의 명암이 그대로 투영된 성장소설인 셈이다.

독일의 방송작가 가비 하우프트만의 '똑똑한 여자는 임포를 좋아한다' (오석균 옮김.동방미디어.7천5백원) 는 성 (性) 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페미니즘 소설류다.

우선 미모의 직장여성 카르멘 렉이 낸 신문광고, 그 소설적 발상이 새롭다.

"매력적이며 성공한 35세의 여성이 우정을 나눌 남성을 구합니다.

단 임포텐츠 (성불구) 여야 함. " 이후 작가가 그리는 해프닝는 근본적으로 권력게임 속성을 가진 '수컷.암컷' 심리의 풍자 같은 것이다.

산문집으로는 시인 서석화의 자전 에세이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개미.7천원)가 눈길을 끈다.

31년 연상의 남자를 만난 어머니와 남자의 본처를 호적상의 어머니로 삼아야 했던 '불행한 딸 아이' 의 비망록이다.

"얘네 아빤 꼭 할아버지 같지" 라는 놀림을 "높은 사람이라서 그래" 로 대답하고 나서도 몰려오는 허전함. "네 엄마가 첩이라는 걸 전교생에게 폭로할 거야. "

그 '폭로' 라는 단어에 두려움.환멸.전율을 느꼈던 시절의 고백은 문득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심리치료사 카르멘 베리와 변호사 겸 출판인 타마라 트레더의 공저 '여자들의 친구' (정선희 옮김.사민서각.7천5백원) 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 해답을 준다.

20대부터 70대까지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 인터뷰를 옮기는 방식이다.

"사실 여자만이 여자가 된다는 게 무언지를 알고 있다. " 그래서 우정은 여자에게 더 소중하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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