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갤러리 '한국현대미술전'…10인 작가의 시간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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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시간' 에 대한 물음은 근원적이다.

흐르는,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때로 멈췄다 다시 일렁이는 그 움직임의 좌표 위 어디에 존재의 닻을 내릴 것인가.

미술에서도 '시간' 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대두되는 화두다.

'공간' 이 작품을 현실화하는 의미라면 '시간' 은 거기에 이르는 도정 (道程) 이다.

삼성미술관과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하는 '한국현대미술전 - 시간' (호암갤러리.02 - 771 - 2381) 은 이처럼 10인의 작가가 걸어온 '시간여행' 이다.

작업방식과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 30대 젊은 사진작가 (구본창.박홍천) 부터 세계적 명성의 60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까지 "동시대 미술을 대변할 수 있는 작가 위주로 선정했다" 는 게 안소연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과 음미가 가능하도록 전시장은 작가마다 독립된 구획으로 나눠져 있다.

드넓은 캔버스 위에 단 하나의 커다란 붓질로 응축된 이우환 화백의 근작은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궤적을 따라 시간의 경과를 느끼게 했던 전작들의 연장이다.

프랑스 거주 작가 한명옥의 실타래 작업은 그야말로 무념무상 구도의 과정이다.

작가의 사유 과정을 좇을 수 있도록 관람객의 동선 (動線) 이 고려된 이 작품은 전시가 끝나는 다음날 (내년 1월25일) 불태워진다.

"마음가는 대로, 실 가는 대로 흐르는 시간을 담았다" 는 설명. '보따리 작가'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 은 전국 방방곡곡 2천7백27킬로미터를 2주일에 걸쳐 트럭을 타고 돌아다닌 행적을 LD에 담은 것. 실제의 보따리들은 다음달 4일 막을 내리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전시 중이다.

트럭에 올려진 색색깔의 보따리짐들은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한다.

백남준이 14개의 현란한 모니터에서 발사하는 '알' (egg) 은 노른자 안의 나신 (裸身) 을 달걀과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태초의 시간' 을 포착해낸다.

최재은의 설치작업은 타임캡슐과 대조적인 의미라 더 흥미롭다.

그는 86년부터 케냐를 비롯한 11개국에 종이를 묻었다.

썩은 종이에 생겨나는 미생물. 생물은 소멸하지만 거기서 생겨나는 미생물은 분명 '제 2의 생명' 이다.

이밖에 회벽에 내려앉은 먼지를 클로즈업해 찍은 구본창, 죽음 후의 시간인 사후세계를 포착한 달걀 템페라화 (물감에 달걀 노른자를 섞은 재료로 그린 그림) 로 선보이는 송현숙, 물방울.글리세린의 미세한 움직임과 속도를 프로젝터로 화면에 보여주는 김영진, 노출시간의 다양화를 통해 순간과 영원을 포착한 박홍천, 어제.오늘.내일의 구분이 없어지는 아이러니를 관객참여 드로잉으로 이끌어내는 김순기 등이 이 시간여행에 동참했다.

내년 1월24일까지 계속되며 작가및 큐레이터와의 대화도 5차례 마련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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