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아이디어 앞엔 수출위기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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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서 남쪽으로 60여㎞ 떨어진 아슈켈론시 앞바다에는 1년전부터 1천t급 대형 바지선이 떠 있다.

이 배는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인근해안의 9천만달러짜리 '루텐버그발전소 석탄하역 해안터미널' 공사를 위해 울산에서부터의 긴 항해를 거쳐 이곳에 정박한 선상작업용 바지선 'HD 100호' . 현대측은 지난해 5월 이 공사를 따냈지만 문제는 이스라엘의 까다롭기 짝이 없는 외국인 취업허가.

이 때문에 공사진척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 우려되자 이 회사는 용접공 등 기술인력을 취업허가가 필요없는 이 바지선의 선원으로 등록해 선상에서 숙식을 해가며 작업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 공사는 1백만㎾급의 발전소에 사용되는 석탄연료를 해상에서 직접 하역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이를 육지와 연결하는 연결로를 만드는 것으로 지름 1.8m 크기의 대형 쇠파이프 1천여개를 수심 25m의 바닷속에 1백m 깊이로 박고 그 위로 대형 콘크리트판을 얹는 어려운 작업.

식당.탁구장.오락장.미니공장 등을 갖추고 2백명이 넘는 용접공 등 3백70명의 인력이 숙식할 수 있는 바지선이 없었더라면 24시간 철야 교대근무로 공사를 제때에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같은 선상공사라는 아이디어로 공사를 적기(適期)에 맞춰 냄으로써 하루 평균 20만달러 이상씩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 현대측의 설명. 김재목(金載牧) 현장사무소장은 "몇 년전 비슷한 공사를 맡았던 이탈리아회사는 완공까지 3년5개월이 걸렸지만 우리는 이미 85% 이상의 공정률을 기록해 공사 2년 만인 내년 5월 완공할 수 있게 됐다" 고 밝혔다.

최근 수출위기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처럼 해외현장에서 갖가지 아이디어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삼성물산 리야드지점은 최근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아 수출중단의 위기에 몰렸지만 주재원들이 쿠웨이트 등 인접국을 뛰어다니며 오히려 상당한 수출실적을 올렸다.

올 들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에 군복 등 군수물자를 1천만달러어치 이상 납품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라크의 화학무기 공격에 민감해져 있는 쿠웨이트에 수백만달러어치의 방독면을 수출하는 계약을 맺기로 했다.

현지 주재원들이 공략한 틈새시장은 이뿐이 아니다. 금은보석 세공품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전정두(全正斗) 현대공방사장은 사우디 근무시절 국민들이 화려한 장식의 보석가공품을 좋아했다는 점에 착안해 이번에 경제협력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 사우디 체류 이틀 동안 6백만달러의 계약액을 올렸다.

아프리카 등지의 무역거점으로 이집트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동일방직은 그동안 보여준 경영 노하우와 노사관리 기법 때문에 이집트정부에서 "아예 정부 공기업의 방직공장을 맡아 운영해 달라" 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텔아비브 =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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