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대그룹 구조조정 개입 재계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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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대 그룹도 정부의 태도가 이번만은 심상찮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기존의 구조조정 계획을 대폭 강화한 새 계획을 다음달중 발표할 계획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계열사 축소규모 (기존계획은 평균 40%)가 훨씬 커지고 구조조정 일정도 크게 앞당기며 외자유치도 강화하는 내용이 될 것" 이라면서 "5대 그룹이 공동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중"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재계는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너무 혼란스럽게 쏟아지고 있는 점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선단식 경영의 폐단을 막기 위해 지급보증 등으로 얽힌 계열사간 고리를 끊고 주력업종 중심의 소그룹 연합형태로 구도를 재편한다는 방침 자체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속도나 추진방법에서는 정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 정부는 큰 방향만 잡아주고 감독하되 실제 추진은 기업과 은행에 맡겨야지 '언제까지 어느 부문을 이렇게 정리하라' 는 식으로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최종 목표가 '기업 경쟁력 강화' 인지, 아니면 '재벌을 해체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또 김대중 대통령과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이 잇따라 "구조조정이 부진하다" 고 하자 억울하다는 반응도 있다.

한편 5대 그룹은 연초 金대통령과 합의한 구조조정 5개항을 나름대로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10조원 규모인 상호지보는 시한인 2000년 3월까지 무리없이 해소가 가능하며 ▶부채비율 2백% 이내 축소도 금융기관이 출자전환을 통해 조금만 도와주면 내년말까지 목표달성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총수의 독점경영도 예전같지 않다고 항변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비서실 등 그룹 지배조직의 해체, 사외이사.감사제도 도입, 소액주주권 강화, 총수들의 계열사 이사등재 등의 조치가 올들어 시행됐다" 면서 "단기간에 이만한 성과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고 주장했다.

한 구조조정 담당자는 "분사나 통폐합 등을 통해 정리를 활발히 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다그치고 있다" 면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6대 이하 그룹과 비교적 안정적인 5대 그룹의 구조조정 수준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 라고 지적했다.

재계는 또 소그룹 연합형태의 재벌구도 개편은 수긍할 수 있으나 추진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유한수 (兪翰樹) 전경련 전무는 "재벌을 재구성한 이후 우리의 산업구조가 어떻게 될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면서 "단순히 '재벌해체' 에 급급하다 보면 5대 그룹,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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