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어머니 덕에 한국 문화 참맛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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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점심시간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는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의 주방.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지지고 볶는 요리사들 사이로 양복을 입은 중년 외국인 남성이 슬쩍 들어온다.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을 맛보며 평하는 그에게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 호텔의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49·사진)이기 때문이다. 점심메뉴를 최종 점검하는 것이다.

스완슨은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데다 부인도 한국인인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어는 잘 못하지만 “미국보다 한국에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고 한다.

최근엔 외국인 투숙객과 호텔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식세계화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영어로 한식을 소개했다. 궁중떡볶이를 ‘한국의 옛 왕실에서 먹던 파스타’라고 재미있게 설명하며 연잎에 싼 불고기와 육회비빔밥 등을 내놨다. “한식은 유구한 한국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고, 이는 다른 나라 음식문화와 경쟁할 수 있는 강점’이라며 그런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완슨의 외삼촌은 6·25전쟁 때인 1951년 국군포로로 잡혀갔다 43년 만에 극적으로 탈북한 고(故) 조창호 중위다. 조 중위는 귀환 후 국군포로 송환 운동에 힘쓰다 2006년 11월 암으로 별세했다. 스완슨은 외삼촌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40년 넘게 북한의 포로수용소와 광산 등을 전전하며 고생하셨는데도 얼굴은 항상 평화롭고 기품을 잃지 않았어요.”

스완슨의 ‘한국 사랑’ 뿌리는 어머니 조창수(83) 여사다. 조 여사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 개관에 기여한 한국 문화 전문가다. 경기여고와 일본 니혼여대를 졸업하고 워싱턴주립대에서 민속학을 공부한 뒤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아시아 담당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기에 앞장섰다.

“어머니가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늘 뭔가를 열심히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집에 돌아오셔서도 전시회 관련 연구를 하셨고, 밤에는 정기적으로 인근 대학에서 일본어 강의를 하셨어요. 그 바람에 저는 저녁식사를 직접 해 먹어야 했지만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은 커져만 갔어요. 요즘에는 뇌종양으로 투병하시면서도 스미스소니언의 한국 관련 전시에 조언을 하고 계세요.”

뇌종양을 앓기 전 유방암과 싸우는 어머니가 안쓰러워 서울로 모셔온 지 1년 남짓이다. “어머니가 심혈을 기울여온 스미스소니언의 한국관이 2007년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유방암 치료 때문에 개관식에 참석도 못하셨어요. 전시실의 세세한 디자인까지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이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아 스완슨은 어려서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한식도 그 중 하나다. “한국 음식은 ‘우리’를 중시하는 한국 특유의 공동체문화가 잘 녹아있어서 세계적으로도 흥미를 끌 수 있어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한식 관련 행사에 가보면 모두가 다 좋아할 거 같은 음식을 왕창 차려낸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람마다 기호가 다른데 모든 이를 만족시키려고 하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 부인 얘기가 나오자 “한국의 큰 자산 중 하나는 아름답고 재능 있는 한국 여성”이라고 했다. 그의 부인은 항공사 승무원 출신 프리랜서 사진가로 미국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잡지 ‘나일론(Nylon)’의 한국판 표지에 실린 보아(BoA)를 촬영했다. 스완슨은 남몰래 나눔 활동도 해왔다. 아동복지기관인 서울 용산의 혜심원을 수년간 돕고 있다. 이 같은 공로로 2007년 서울시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은퇴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제2의 삶을 꾸려갈 계획입니다. 제 2의 고국이니까요.”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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