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알고보니 국어사 연구의 보물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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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원장 김정배·전 고려대 총장) 장서각은 19세기 중엽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본 『동의보감』(사진)을 6일 언론에 공개했다. 궁체(宮體)로 흘려 쓴 필사본이며 언해본으로는 유일하다. 당시 왕실 여성들에게 읽히려 한글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1613년 초간본)이 조선시대에 한글로 번역됐다는 사실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중연은 “17세기 초 왕명을 받아 허준이 완성한 『동의보감』이 250여 년 뒤에도 여전히 왕실 의서로 참고됐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글본 『동의보감』은 한문 원본(전 25권 25책) 중 일부를 번역해 손으로 직접 옮겨 썼다.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의 5개 분야 중 ‘내경편’의 일부를 옮긴 3책(1, 3, 5권)만 남아 있다. 김학수 한중연 국학자료조사실장은 “『동의보감』 전체를 한글로 옮길 계획이었으나 도중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한글본 『동의보감』은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 자료로 꼽힌다. 이래호 전북대 HK연구교수는 “원본의 한자 단어를 그대로 한글로 음역하는 축자역을 택한 번역 방식 때문에 한계는 있지만 한국어 변천 과정을 추적하는데 의미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자음만으로는 잘 알기 힘든 단어에는 작은 글씨로 고유어 한글 표기를 병기했기 때문에 국어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문 원본에 나온 ‘진아(眞牙)’를 ‘진아’라고 한글로 옮기면서 작은 글씨로 ‘란니’라고 병기해 놓는 식이다. ‘진아’는 ‘사랑니’를 말한다. ‘사랑니’를 ‘란니’로 표기했다면, ‘사랑니’가 ‘사랑(愛)’과 관계 된다는 민간어원설은 잘못된 해석이 된다. 현대어 ‘사랑(愛)’의 표기는 용비어천가 시절부터 ‘랑’이기 때문이다.

한중연 장서각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초간본 『동의보감』과 이번에 공개한 한글본을 포함, 총 12종의 『동의보감』을 소장하고 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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