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권력암투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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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크렘린의 권력암투가 가열되고 있다.

그동안 모스크바에서는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으려는 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측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돼 왔다.

2000년 대선 선두주자로 꼽히는 알렉산드르 레베드 전 국가안보서기와 밀착관계에 있는 '킹 메이커' 로고바자 그룹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계열의 대표적 신문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13일 "권력이양이 필요하다" 고 치고 나왔다.

폭로전문 주간지 사베르센노 세크레트노 (1급비밀) 도 최근호에서 소식통을 인용해 "옐친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고 폭로했다.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시장과 유착돼 있는 모스트 그룹 계열의 신문 시보드냐도 13일 "러시아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권력중심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를 비롯한 정치인들도 권력이양과 자진사임.탄핵 등 온갖 무기를 동원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크렘린측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옐친의 차녀 타치아나 디야첸코, 발렌틴 유마셰프 행정실장 등이 13일 오후부터 언론사 사주들에게 "대통령의 인기가 낮고 아픈 것도 사실이나 사임의사는 없다.

건강도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다" 고 반발했다.

친개혁파 과두재벌의 대표자인 오넥심 방크 그룹 계열의 언론들도 이들의 '뜻' 을 받아 13일 "옐친이 아파도 나라의 분열방지를 위해 그가 권력중심에 머물러야 한다" 는 반론을 폈다.

개혁파들은 세르게이 키리옌코 전 총리의 하원보궐선거 출마설과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의 신당창당설을 흘리면서 세 (勢) 결집에 나섰다.

그러나 대다수 러시아의 민심은 이미 옐친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뉴스의 초점은 옐친이 아니라 내각으로 맞춰지고 있다.

또 파산위기에 처한 재벌 'SBS - 아그로 방크' 에 대한 지원을 시사하는 등 재벌과의 정치적 제휴를 모색하는 듯한 행보도 보인다.

분석가들은 프리마코프가 보수.개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옐친의 힘을 자신에게 이동시키려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옐친의 병상통치가 러시아정치권을 또 다시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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