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장무환씨 귀환 …탈북후 제3국 거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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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갔던 張무환 (72) 씨가 최근 북한을 탈출한 뒤 45년만에 남쪽으로 귀환했다.

안기부는 30일 최근 북한을 탈출했던 張씨가 제3국에서 머물다 30일 오전 10시30분 중국 다이롄 (大連) 발 대인호 편으로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다고 발표했다.

탈출과정에서 남한에 사는 부인 박순남 (朴順南.68) 씨가 아들과 함께 지난달 중국에 가서 남편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 포로가 귀환한 것은 94년 조창호 (趙昌浩) 씨와 97년 12월 양순용 (梁珣瑢) 씨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 張씨 사연 = 그는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53년 4월 국군에 입대했다. 정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그해 7월 하사로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됐다.

이후 張씨는 국군 포로들이 집단 수용됐던 아오지수용소와 탄광 등에서 45년간 생활해오다 지난 8월 북한을 탈출, 관계당국의 도움으로 귀환했다.

張씨의 입대→포로 장소→북한 거주 (남한에서 전사자 처리) 과정은 梁씨 (함양 거주) 와 똑같다. 梁씨는 "張씨에 대한 기억은 안나나 꼭 만나고 싶다" 고 반가워했다.

특히 張씨는 50년 6.25발발 직후 국군에 자원입대했다가 집에 돌아온 뒤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탈출해 고향에 돌아온 뒤 53년 4월 국군에 다시 입대했다. 그래서 그의 비극은 더욱 기구하다.

한국전사상 가장 치열했던 금화지구전투때 張씨의 동료 부대원은 전원 전사했고, 부상한 그는 포로가 됐다.

한편 두번째 귀환한 梁씨가 공개한 국군포로 명단엔 張씨의 이름은 없었다.

국방부는 張씨를 전사자로 처리, 국립현충원에 위패를 보관해왔다.

◇ 부인 朴씨 사연 = 張씨의 가족은 고향인 울진에 사는 부인과 포항에 사는 아들 영욱 (45.포항제철 포클레인 기사) 씨가 있다. 부인 朴씨와 일문일답.

- 심정이 어떻습니까.

"꿈인지 생시인지…평생 과부소리를 듣고 살아왔는데…죽었다고 생각해 아들이 5년 전에 고향에 비석을 세웠어요. 지난달 중국에서 남편을 만나보니 뚱뚱했던 얼굴이 쪼그라들고 살이 하나도 없더군요. "

-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18세 (49년)에 시집왔다가 돌도 안된 아들을 키우는데 남편이 죽었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그동안 재가하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말도 안된다 생각해서 아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

- 남편과는 얼마나 같이 지냈습니까.

"4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6.25가 터지자 남편은 국군으로 자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연락이 없어 결국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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