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중앙도서관…'한글책'은 있어도 '한인'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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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중앙 "한 도시의 지적 수준은 도서관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 한마디가 무턱대고 그곳에 대해 궁금하게 했다. 다운타운에 있는 LA시 중앙도서관이 이번 ‘탐험지’다.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어떤 곳일까. 한글 서적은 있을까. 어떤 책들 일까.’ 여러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한산한 평일 오후 높은 빌딩 숲 사이로 한낮의 땡볕이 흘렀다. 수많은 은행들 사이를 헤치다 보니 파리의 한 거리를 연상시키는 도서관 건물이 등장했다. 도서관 한켠 그늘에는 비둘기와 어우러져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본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문득 저쪽 너머에 앉아 책을 보며 도시락을 먹고 있던 사람이 눈에 띄었다. 같은 한국인끼리는 외국인들 속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했던가. 말을 걸어보니 역시나 어학 연수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한인이다.

박성희(30)씨는 1년 여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2달 정도 LA에 머물고 있는 차였다. 무료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에 도서관에 종종 와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고 했다.

“한인 타운 내에도 도서관이 있지만, 중앙 도서관이 가장 시설도 좋고 넓어서 자주 왔어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어서 간혹 시원한 건물 내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도 있고(웃음), 가족끼리도 많이 들리는 것 같고… 신기한 것 같아요.”

사람들을 따라 입구로 들어가보니 여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안내 데스크와 여러 시설들이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검색용 컴퓨터와 회원 카드 신청 데스크 등은 한국의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들이다.

우선 도서관 카드 만들기에 착수했다. 카드 발급은 무료지만 ID와 가주내 거주지 확인이 필요하다. 간단한 신청서 작성을 통해 즉석에서 도서관 카드를 받아 들고 나니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두팔 걷고 한국 서적 검색을 시도했다. 한글 시스템을 바란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스페인어와 일본어로는 불편하게나마 웹사이트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한국 서적 검색은 영문 웹사이트에서 한글을 영어 발음으로 입력해야 했다.

가장 일반적인 ‘Kim’ 검색을 통해 눈에 띄인 책은 김훈의 ‘남한산성(Kim Hoon-Namhan Sansong)’이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의 침략으로 치욕의 시기를 겪었던 조선 인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남한산성을 찾아갔다. 책이 진열된 곳은 한국어 서적을 모아놓은 ‘K서고’(빌딩 1층 국제어 서고).

책은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실망이다. 책이 꽂힌 곳은 한눈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뜸한 듯 먼지가 쌓여 있었다. 다른 책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서를 찾았다. 한인이다. 도서관내 진열된 한글 서적은 선반 4개에 걸쳐 1만5000여권에 달한다고 했다. 의기소침했던 기분이 다소 좋아졌다. LA 한복판에서 만권이 넘는 책을 만나서다. 장황한 사서의 도서관 설명을 뒤로 하고 한국어 서적과 이용 수준에 관해 물었다.

“한국어 서적 업데이트나 지원이 중국어보다 못해요. 한인들의 이용이 많지 않은 탓이죠.”

돈 한푼 안들이고 양껏 책을 볼 수 있는데 열람하는 한인이 별로 없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LA에서 한글 서적을 구입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고 들었던 터다.

나오는 길에 들른 도서관 기념품 샵에서도 일어와 중국어 번역 시집은 있었지만 한국 관련 기념품은 전무했다. 가장 미국적인 곳에서 한국을 발견했건만 한국은 잠자고 있었다.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나라도…’라는 생각에 한국 서적을 빌리다가 잠시 생각했다.

[미주중앙 : 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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