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대립 겪은 MB “중도 강화돼야 사회가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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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중도실용주의는 정권의 근간”이라고 선언한 것은 적어도 한 달 이상에 걸친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 때도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자신의 대표 공약상품으로 내세웠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방송될 제20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KBS 앵커와의 대담 형식으로 녹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8·15 생계형 서민범죄 특별사면과 미디어법 처리, 사교육비 경감 대책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청와대 제공]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 들어 중도실용주의를 새롭게 가다듬고 연구하게 된 현실적인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극도의 사회적 혼란을 경험하면서였다. 이 대통령이 “사회적 통합이 이뤄지고, 사회 전체가 건강하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첫 화두를 던진 6월 22일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한 달째 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진보나 좌파는 앞서가는 사람, 보수는 변화에 반대한다는 개념 자체가 옳지 않다. 왜 진보나 보수 사이에 선을 긋느냐”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체계화된 생각을 담았다기보다는 불쑥 던진 ‘화두’적 성격이 강했다.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이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라는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며 ‘이를 정권의 근간’이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의 선언으로 그동안 ‘중도 강화론’ ‘중도중시론’ ‘중도실용주의’ 등으로 제각기 불렸던 용어는 ‘중도실용주의’로 정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중도강화론은 보수를 버리고 가운데서 눈치를 보겠다는 것” “보수가 아닌 척해서 서민 표를 얻어보겠다는 꼼수”라는 극우와 극좌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도실용주의를 국정의 금과옥조로 지켜 나가겠다는 대통령 자신의 의지가 확인된 것이기도 하다.

첫 화두를 던진 뒤 한 달 동안 이 대통령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겉으로 드러난 이 대통령의 발걸음은 ‘친서민’으로 분주했다. 시장을 찾아다니고 교육현장을 뛰어다녔다. 다른 한편으로 이 대통령은 학자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의 원로들과 소통하며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듬었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등을 비롯해 현 정부와 거리를 둬온 중도진영 학자들과의 비공개 교류는 이를 위한 프로젝트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 과정에서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윤리적으로 제어되지 않는 시장경제나 자본주의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이 대통령의 정리된 지론도 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미디어법과 관련된 여야의 극단적 대립도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는 전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디어법은 29년 전 신군부가 만든 규제를 철폐하고,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육성해 한국의 미디어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개혁적 법안”이라며 “극단적인 이념 충돌의 대상이 된 것을 이 대통령은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와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중도실용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작업에도 본격 돌입했다. 미래기획위원회는 각 부처와 협조해 중도실용주의의 대표적 정책인 ‘휴먼 뉴딜’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또 국정기획수석실은 중도실용주의의 논리적 바탕이 될 ‘통합형 자유주의’를 국민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20회 라디오 연설은 대담으로=격주 월요일마다 전파를 탄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가 27일로 20회를 맞는다. 이 대통령이 홀로 연설하던 과거의 형식과 달리 20회 특집은 이 대통령과 사회자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20회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8·15 생계형 서민범죄 특별사면 ▶미디어법 처리에 대한 입장 ▶사교육비 경감 등 서민정책 ▶경제회복 시기 ▶재산 사회 기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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