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출된 마약 원료 탈레반 관련성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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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마약 헤로인의 원료가 되는 무수초산을 누군가가 대량으로 사갔는데, 용도가 의심스럽다”는 신고가 올 2월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은 국가정보원과 협조해 경로를 추적했다. 그 결과 무수초산으로 의심되는 물건이 이미 부산항을 빠져나가 이란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배는 두바이를 경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경찰은 두바이 현지 경찰과 함께 배에 실린 컨테이너를 압수했다. 섬유제품 속에 무수초산 4t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 이른바 ‘커튼치기’ 수법이었다. ‘신고한 수출 품목으로 커튼을 쳐 불법 밀반출을 감춘다’는 의미다. 최종 목적지도 이란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곳은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인 탈레반의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섬유 수출업자인 파키스탄인 K씨(39)를 추적했다. 23일 경기도 양주에 있는 K의 창고를 급습한 경찰은 3t의 무수초산을 추가로 찾아냈다.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26일 무수초산을 밀수출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K와 한국인 노모(45)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무수초산은 수출입 때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의 승인이 필요한 통제 품목이다.

강인석 국제범죄수사계장은 “수사 결과 밀반출된 무수초산은 총 9t에 달한다”면서 “헤로인을 4.5t가량 만들 수 있는 분량”이라고 말했다. 1회 투약 분량인 헤로인 0.05g의 소매가는 약 4만원. 밀반출된 무수초산으로 3600억원 상당의 헤로인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사 결과 한국인 노씨는 무수초산을 국내에서 사들이는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K가 탈레반의 조직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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