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3년이 고비, 최악의 경우 회사 쪼개 임원에게 물려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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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24면

장병화 가락전자 회장은 “중소기업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장수(將帥)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뜻에서 가족 승계 대신 전문경영인 후계자 공모에 나섰다.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면서 사장이면 됐지, 무슨 회장입니까. 면구스럽습니다.” 장병화(62) 가락전자 회장은 자신의 명함을 내주면서 이렇게 첫인사를 했다. 기자가 30년 넘은 업력을 가진 오너 경영인이라면 회장 직함이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하자 장 회장은 “임직원 37명, 매출 120억원짜리 회사에선 과분한 직함”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가족 승계 대신 후계자 공모 중인 장병화 가락전자 회장

장 회장이 ‘과분한 승진’을 한 데는 사연이 있다. 음향·영상시스템 기기를 주로 만드는 가락전자는 장 회장이 1977년 서울 청계천에서 만든 회사. 일본 나쇼날 제품을 베껴가면서 기술 독립을 이뤘고, 20여 년 전 경기도 부천으로 본사를 옮기고부터는 ‘국산 앰프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오디오 업계에서 강소기업으로 자리를 굳건히 한 것. 그러나 후계자 승계가 고민이었다. 장성한 2남1녀를 뒀지만 장 회장은 “잘 키운 중소기업이 장수(長壽)기업이 되려면 유능한 장수(將帥)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1년여의 준비 끝에 2007년 10월 대기업 출신 사장을 영입했다. 이때 그가 하릴없이 회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여기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기존 임직원과 마찰을 빚으면서 공들여 영입한 사장이 1년 만에 회사를 떠난 것이다. 이후에도 장 회장은 ‘후계자 찾기’에 온힘을 쏟았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후계자를 공모한다’고 호소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요즘도 그의 관심사는 좋은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후계자 영입에 실패한 것은 내부 준비가 덜 됐던 탓 아닌가.
“내부 합의는 충분했다고 본다. 2006년 모든 임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창립 30주년을 맞을 것인가’ 고민했다. 결론은 능력 있는 경영인을 모셔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드헌팅회사,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자문을 얻어 대기업 출신 사장을 영입했다. 이분이 2007년 10월 1일 입사했는데 1년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나.
“지나고 보니 서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중소기업은 사람이 전부다. 지시나 명령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영입 6개월 만에 임직원 37명인 회사에서 직원 7명이 사표를 냈다. 그런 뒤에도 입사 20년이 넘은 임원 2명이 그만두겠다고 하더라. 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사장이 사직서를 내더라. 떠난 직원을 다시 불러들이는 등 회사를 추스르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예상보다 내상이 컸는데 후계자 영입을 포기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해졌다. 매출 1조원 하는 회사보다 100억원 하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구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리더 문제로 회사가 흔들렸다는 것은 리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아니냐. 그러면서 후계자가 갖춰야 할 자질로 ‘책임감’을 추가했다. 중소기업 CEO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한다. 선택을 잘못하면 1년이면 회사가 기울고, 2년이면 망할 수 있다. 내부 유보금을 포함해 우리 회사의 투자 여력이 50억원쯤 되는데, 이만하면 성공했다 싶지만 아차하면 바로 나락에 빠진다.”

-가락전자의 CEO ‘스펙(자격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가족의식’이다. 중소기업은 한몸처럼 움직인다. 어떤 직원은 왼팔이고, 또 어떤 직원은 오른팔이다. 한몸처럼 움직이려면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직원 잔치도 내 집 잔치, 초상도 내 집 초상이다. 그래서 책임감이 중요한 항목이다. 그 다음이 ‘미래 비전’이다. 과거에는 한 업종에서 300개 회사가 같이 먹고살 수 있었다. 지금은 30개 정도만 살 수 있다. 앞으로 5년 뒤엔 3개밖에 못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시장 변화를 짚어내는 CEO의 안목이 중요하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어학 실력도 중요하다.”

-그런 후계자 재목이 내부에 없었나.
“한 번은 중요한 수출 주문을 따왔는데 내부에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임원이 없었다. 결국 계약이 취소됐는데, 나중에 보니 계약을 맡았던 직원이 그 주문량을 가지고 독립했더라. 부끄럽지만 이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전문지식도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경영자를 뽑는 것이지 기술을 전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후계자에게 어떤 대우를 해줄 것인가.
“취임 첫해 연봉은 1억원이다. 기본급 비중은 많은 편이 아니다. 성과급으로 세후 이익의 10%를 지급할 것이다. 단 5억원 한도로 한다. 첫해 회사 주식 지분의 1%를 주고 차츰 늘려나가 5년 뒤 승계가 끝나면 10%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첫해엔 사장 직함만 주지만 2년 뒤에는 공동 대표, 그 다음 해에는 단독 대표 자리를 줄 계획이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갔다. 장 회장이 후계자 영입을 결정한 것은 2006년이다. 회사 설립 30주년, 개인적으론 환갑을 앞두고서다. 그는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회사 연구소에 가봐라. 내가 가진 건 케케묵은 아날로그 기술이 전부인데 음향기기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더 이상 내가 경영하면 회사가 망할 것 같더라. 나는 떠나도 기업은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기업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새 인물이 와도 4~5년은 같이 일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환갑 때는 새 인물을 찾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대(代)를 잇는 기업도 많다.
“그렇게 성공한 기업이 조명 받아서 그렇다. 소리 없이 사라진 기업이 훨씬 많다.”

-부인과 자녀도 동의했나.
“아이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재산은 물려줘도 기업 경영은 별개라고 ‘세뇌’를 했다. 솔직히 아내는 아직 이해 못하는 눈치다. 그냥 내 고집이 워낙 세니까…. 집에서는 이 얘기를 하지 않는다. 물론 충분한 경영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하면 아들도 후계자 레이스에서 경쟁할 수 있다.”

-임직원은 어떻게 설득했나.
“모두 불러놓고 ‘나보다 오래 회사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려면 좋은 경영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 근속자 중에는 당연히 사장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후계자 영입은) 이들에게 ‘희망 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돼야 사장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자극을 심어주지 않겠나. 부족한 자질도 본인이 스스로 느낄 수 있다. 그래야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에게든 기회를 줄 것이다.”

-지금 서랍 속에서 몇 명의 후보자가 잠자고 있나.
“(고민하다가) 10명쯤 된다. 지금은 공개 모집을 중단한 상태다. 다만 지인 소개로, 혹은 소문을 듣고 가끔 이력서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 될성부른 작은 회사를 인수해 그 회사 경영자에게 가락전자를 맡길 생각도 하고 있다. 아침에 눈뜨면서 눈 감을 때까지 이 고민을 한다.”

-이제 누군가에게는 전화기를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
“10명 중 1명의 이력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조만간 만나 볼 요량이다. 그러나 (실패한 경험이 있어) 솔직히 두렵다. 확실한 계획이 섰을 때 만날 것이다.”

-만약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한은 언제인가.
“일단 2010년 1월 1일자로 새 사장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이다. 최악의 경우 회사가 세 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쪼개서 20년 사업 동지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가락’이라는 이름은 무너지는 것이다. 시한은…, 글쎄…, 3년 정도 남지 않았겠나. 눈이 계속 어두워진다.”

기자가 “3년 안에 후계자와 함께 다시 인터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장 회장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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