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주 5선 의원 임용근씨, “한국인 최초 미국 주지사 꿈 이룰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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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0년 만이다. 전체 인구 370만 명 중 한국인이라야 고작 2만여 명인 미국 오리건주의 주지사 후보 경선에 나섰던 재미교포 정치인 임용근(74·사진)씨가 다시금 주지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 말이다. 당시 정치 신인이던 그는 그동안 상·하 주의원 5선의 관록을 쌓았고, 무모하게 비쳤던 주지사 도전은 ‘실현 가능’의 범위 내에 들어왔다.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미국 내 주지사 당선을 그가 이뤄낼 수 있을까.

이달 16일 열렸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차 방한한 임 전 의원은 “이번엔 그때(20년 전)와 다를 것”이라며 “내년 선거에서 반드시 당선해 250만 재미동포의 명예를 드높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1935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그는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에서 신학대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미국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한국 고아들을 미국까지 데리고 가는 일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1년간 공부한 뒤 한국의 가족을 불러들였다. 그 뒤 30여 년간 그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였다. 작은 식료품점을 열었던 그는 성실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고, 탄탄한 비타민 제조업체와 부동산업체까지 갖게 됐다. 경제적 안정을 찾아갈 때쯤 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교회뿐 아니라 각종 사회 단체의 대표를 맡아 미 주류사회와의 네트워크를 넓혀갔다. 한인 총연합회 회장뿐 아니라 아시아 시민권협의회 회장, 상공회의소 총회장 등 굵직한 감투도 따라붙었다.

정치 입문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목사님의 권유 덕이에요. 미 오리건주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인데 저는 복지제도만 커지고 세금은 무거워지는 그런 정책이 싫었어요. 교회 목사님께 그런 의견을 말했더니 ‘당신이 주지사에 나가보라’시는 거예요. 처음엔 웃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가슴에 뭔가 계시가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90년 공화당 주지사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정치경험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시작한 일이었다. 결과는 2위. 정치 초보인 한국인에겐 기적적인 성과였다. 그 뒤 상·하 주의원에 5번 내리 당선했다.

그가 주지사가 되기 위해선 공화당 내 예선을 거쳐야 한다. 자신 있는 걸까. “내년 5월 공화당 경선, 12월엔 주지사 선거가 있어요. 오리건주는 24년째 민주당 정부예요. 이제 바뀔 때가 됐죠. 저는 상하원 경험 뿐 아니라 사업도 잘 해냈어요. 모범적 가정도 이뤘고요. 현재 두 명 정도 당내 경쟁자가 있는데 연륜이나 실력 모두 제가 앞선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묻는 질문에 “공화당이지만 민주당 정책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진보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화당 내 보수파는 내가 봐도 너무 오른쪽이에요. 저는 민주당도, 무소속도 끌어안을 정책적 이념을 갖고 있어요. 20여 년간 정치 생활을 하며 사람들에게 얼굴도 충분히 알린 만큼 공화당 후보는 물론 주지사 당선도 반드시 될 거라고 봐요.”

그는 16일 국가조찬회기도회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주지사 도전 의사를 전했다. 이 대통령은 “화이팅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파행으로 얼룩진 한국 정치를 보는 시각은 어떨까. 그는 타협을 중시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당끼리 싸우는 게 꼭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해결책을 찾아야죠. 정치는 ‘타협의 예술’ 아닌가요.”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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