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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 원조 김영환 장군 붉은 치마 옷감으로 머플러 급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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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빨간 마후라(머플러가 옳은 표기)는 하늘의 사나이…” 2006년 신상옥 감독의 장례식에선 공군 군악대의 연주로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1964년 신 감독이 만든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제가(쟈니 브라더스 노래)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서울 명보극장에만 22만 관객이 몰린 히트작이었다.

지난해 7월 3일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빨간 마후라’를 디자인했다. 1950년, 일본 전투기 F-51 10대를 인수한 지 단 하루 만에 훈련도 없이 10명의 공군이 북한을 향해 출격한 ‘조종사의 날’을 기념한 것이었다. 왜 ‘빨간 마후라’는 공군의 상징이 됐을까.

‘빨간 마후라’의 원조는 김영환 장군이다. 제일고보(경기고 전신)와 일본 관서대 항공과를 졸업한 그는 초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김정렬 장군의 동생이다. 김영환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 영웅 리히트호펜을 좋아했다. 리히트호펜은 붉은색으로 칠한 전투기를 몰고 다니며 연합군기 80대를 격추한 사람이다. 붉은 비행기 덕에 그의 별명은 ‘붉은 남작(Red Baron)’이었다.

김영환은 리히트호펜 스타일의 모자와 장화를 착용하고 다녀, ‘멋쟁이 바론’으로 불렸다. 그는 장난기도 심했다. 항공기를 몰고 한강 다리 밑의 교각 사이를 누비는가 하면, 이화여대 상공을 저공 비행해 학교 측으로부터 “시끄러워 수업을 할 수 없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빨간 마후라’를 처음 두른 건 강릉 10전투비행전대 전대장 시절이었다고 한다. 형수(김정렬 당시 공참총장의 부인)가 입은 붉은 치마를 보고 문득 리히트호펜의 붉은 빛깔이 떠올랐는지 “조종복과 잘 어울리겠는데요”라고 한마디 했다. 형수는 치마를 짓고 난 자투리 옷감으로 그에게 머플러를 만들어줬다. 다른 설도 있다. 추락한 아군 조종사를 수색하는 방안을 논의하다가 눈에 띄는 빛깔의 머플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강릉 시장에서 인조견을 사와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른셋의 나이로 제1훈련비행단장으로 재직하던 54년, 그는 F-51을 몰고 사천에서 강릉으로 가던 중 실종됐다. 빨간 머플러를 두른 채 하늘로 사라져, ‘번개처럼 지나가는 청춘’이란 노래 가사처럼 영원한 전설이 됐다. 김영환 장군은 6·25 때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상국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