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43.미국서 '한국식으론 한계'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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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에 와서 레드베터 코치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놀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가슴아팠던 것은 한국의 주니어 골퍼들이 받고 있는 교육이 얼마나 무계획적이고 주먹구구식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내가 이곳에서 받은 레슨에 비하면 한국의 골프교육은 교육이라고 하기에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나의 일과중 하나는 미국생활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다.

골프장마다 제각각인 코스, 주의해야 할 것들, 마음 편한 음식점과 숙소까지. 동료들과의 교제도 메모거리가 된다.

그들에게 얻는 정보도 무시할 수 없지만 특히 플레이 중의 제스처나 표정관리 등 매너에 관계된 것들을 배우고 있다.

레드베터 코치에게 받은 교습내용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그의 골프 아카데미 운영방식.훈련방법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모두가 나의 꿈인 후배 양성을 위한 모범적인 샘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재목은 좋은 토양에서 더욱 크게 성장한다' 는 것을 나는 미국에 와서 실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건상 불가능하지만 골프는 처음부터 잔디 위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연습장에서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필드에 나가면 잔디결이나 바람에 적응하지 못해 한동안 쩔쩔매게 마련이다.

뒤늦게나마 이런 조건에서 훈련을 받은 것은 나로서는 천만다행이지만 한국의 후배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사실 나는 이곳에 와서 한국의 후배들이 얼마나 무계획적인 교습을 받는지 확연히 알게 됐다.

교습 자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 코치가 좀 낫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가 줄을 서고 그러다 효과가 없다 싶으면 또다시 다른 코치를 찾아나서는 아버지들의 '바짓바람' 이 문제다.

나는 아버지에게만 줄곧 코치를 받아 다행이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코치를 바꿀 때마다 스윙 자세나 교육방식이 달라 안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코치들도 학생이 자주 바뀌면 반짝효과를 볼 수 있는 '벼락치기' 교습에 그치게 된다.

스윙 자세는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게 개발해 오랜 시간을 두고 다듬어져야 한다.

내가 골프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라" 는 것이다.

나에게 인생을 걸었던 아버지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나와 약간의 견해차가 있다.

나는 "선수는 부모로부터 분리돼야 한다" 고 주장하고,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 말씀하신다.

아버지가 모르시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홀로서기, 즉 의지하려는 마음과 싸우는 것이었다.

부모한테 의지하게 되면 결국 부모탓을 하게 되고 혼자 설 수 없다.

나는 지금 먼 골프의 여정을 홀로 떠나는 모험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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