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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벌 마크'는 잘못된 표현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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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학.정부.기업할 것 없이 정체성 기본표기를 심벌 마크(symbol mark)라 한다. 그러나 정체성 마크(identity mark), 또는 아이덴티티 마크라 불러야 옳다. 최근 대학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체성 표기를 제작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비단 한국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니고, 미국 대학도 홈페이지에 UI(University Identity) 메뉴를 소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 UI 규정은 한국 대학의 그것과 똑같은 표기를 아이덴티티 마크라 부르지, 심벌 마크라고는 하지 않는다. 심벌 마크를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한국과 일본 것만 나온다. 영어권에서 쓰는 표현이 아닌 까닭이다. 미국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 뜻을 모른다. 대학에서는 이미지가 경쟁시장에서 기업이 전략적으로 경영해야 할 요소라고 가르치고, 또 글로벌 시대에 인터넷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면서 정작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모르는 영어로 자신의 정체성 마크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

법무부 홈페이지 'CI 소개'도 '심볼 마크'라고 한다. 부산광역시청은 상징마크, 옥천군은 심벌 마크, 무주군은 심벌, 목포시는 상징,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로고, 울산광역시 중구는 상징 로고, 부산광역시 연제구는 문장, 해운대구는 휘장, 군산시는 CI(City Identity)라고 한다. 용어 통일을 보지 못한 가운데 저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대학의 정체성 프로그램을 UI라 한다면 기업은 CI(Corporate Identity), 정부는 GI(Government Identity)다. 미국 주정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요소로 실(seal).기(flag).주의 의사당.모토.노래.동물.광물.꽃.곤충.민속춤.주를 빛낸 인물 등 각기 다양하게 이용하고 이들을 심벌로 소개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 지역의 자연 지리적 또는 역사 문화적 상징이자 특징이고 자존심이다. 최근에는 대표적 정체성 표기로 로고도 많이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은 심벌 마크.새.꽃.나무로 천편일률적이고, 개념 분화도 덜 돼 정확한 용어 통일조차 안돼 있다. 정체성 요소 자체가 매우 단조롭다. 지역마다 차이가 없고, 상징이라고 하나 상징적이지 못하다. 모양새만 겨우 갖추고 있다. 일본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 혹자는 나라가 좁아 그렇다고 하나 우리만큼 지역마다 고유한 자연.인문적 정체성 요소가 풍부한 곳도 드물다.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거나 표현 방법을 모르는 탓이다.

영어문화권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을 한국이 이처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심벌 마크는 일본이 만든 영어 조어다. 일본은 오랫동안 국내 디자인 업계의 이론.용어 표현을 지배했다. 아마도 그 탓이리라. 일본도 정체성 표기를 심벌 마크, 심벌이라 불러 왔다. 일본 코니카.미놀타 회사의 로고 설명을 보라. 우리 주변 어디서 본 듯한 것일 게다. 문화와 개성의 시대 어설픈 모방은 아니하는 것만 못하다.

박흥식 중앙대 교수.공공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