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동물다큐팀, 6개월 잠복 호랑이와 숨죽인 첫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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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찾아 지난해 2월 출발해 숨바꼭질 1년 2개월. EBS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 팀에게 그 시간은 잠복촬영과 무인센서카메라 촬영의 쉼없는 반복, 그리고 정처없는 기다림의 나날들이었다.

13~14일 밤 9시50분 방영되는 '야생의 조선곡 (谷) 호랑이' 시사회에서 연출자 박수용PD는 "따라다녀서는 못 찍으니 천상 기다려야 한다고 맘을 먹었다" 고 회고했다.

잠복을 위해 15m가 넘는 나무 위에 텐트를 치면 최소 체류가 1달. 배설도 안에서 해결했다.

땅에 센서를 장착해 호랑이가 지나가면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소리가 울리지만 언제 지나갈지 몰라 반은 자고 반은 깨있는 상태로 버텨야 했다.

'냄새와의 전쟁' 도 만만찮았다. 총을 경험한 호랑이는 쇠 냄새에 민감해 무인카메라만 4대를 부쉈다. 호랑이 울음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설치한 마이크도 부지기수로 부서졌다.

사람 냄새도 풍겨서는 안됐다. 미숫가루로만 끼니를 때우고 텐트를 사슴똥으로 칠갑을 해 위장했다.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텐트에서 숨죽여 지낸 6개월만에 결국 호랑이와 첫 대면을 했다.

박PD는 "결국 인간이 손을 대지 않는 것, 그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고 무겁게 입을 뗐다. 인가에 내려왔다 생포된 호랑이가 마취가 덜 깨 떨리는 발걸음으로 숲속을 향하는 2부 마지막 장면은 찍는 이에게도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여 간 다큐팀을 안타깝게 했던 건 비단 호랑이뿐만이 아니다. 15일 이어지는 두만강 아무르 표범의 이야기. 근친교배를 거듭해 이제는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기도 해 25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생태계 파괴와 밀렵 등으로 점점 살 곳을 잃어버리는 야생동물의 현주소가 담담하게 펼쳐지지만 혹시나 '동물의 왕국' 류를 기대한다면 이 참을성의 기록은 좀 밋밋할지도 모르겠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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