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잘못된 '짬뽕'제도의 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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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국회의원들은 바쁘고 활동적이기 그지없다.

지역구민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나라의 주요 문제들을 파헤치는 청문회를 연신 주최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정책활동을 주도하면서 자기 이름을 딴 법률들이 제정되도록 정신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국 국회의원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부의된 법안에 대해 지역구민 이외에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신념으로 당당히 반대 또는 찬성표를 던진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의 모습은 어떤가.

당직을 맡은 불과 10명 안팎의 의원들을 빼놓고는 도대체 지역구민을 만나는 일 외에 정책적으로 별 할 일이 없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실상이다.

그들은 또한 본인의 의사가 어떻든, 또 지역구민의 의사가 어떻든 당론이라는 것이 시키는대로 투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이럴까. 우리 국회의원들이 무능하고 소신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의원들은 70%가 장.차관, 박사, 교수, 의사 등 최고 엘리트 출신이다.

우리 의원들이 그렇게 무능하고 무소신해 보이는 것은 제도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잘못된 짬뽕' 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행정부는 대통령제로 하면서 국회는 내각제 식으로 운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한쪽 발에는 운동화를 신고 다른 발에는 하이힐을 신은 것과 비슷하다.

끊임없이 불균형과 부조화와 비틀거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첫째로 의원들이 하는 일 없어 보이는 것은 정책기능을 의원들을 제쳐놓고 당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나 야당을 막론하고 당에다 소위 정책위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속한 몇몇 의원들이 정부 모든 분야의 정책사항들을 다 관장한다.

그러니 정책위 소속 의원들은 매우 바쁘지만 나머지 90% 의원들은 실제 정책 분야에서 별 할 일이 없다.

그러니 국민들의 눈에는 마치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책기능을 당에서 수행하는 것은 내각제에서 할 일이지, 대통령제 아래서 할 일이 아니다.

내각제 아래서 당이 정책기능을 수행하는 이유는 개인이 아니라 당이라는 조직이 정권을 접수하고 그래서 사실상 당이 곧 정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이 정책기능을 주도하듯 내각제 아래서 당이 정책기능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서는 다르다.

정책기능을 대통령이 수행하는데 또 당이 정책 기능을 수행하면 의원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

우리는 비싼 월급을 주면서 국회의원들은 빈둥빈둥 놀게 하고 정치자금을 따로 모아 당이라는 별도의 조직으로 정책활동을 벌이는 문자 그대로 고비용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활발하게 정책활동을 하는 것은 바로 당의 정책활동을 줄이고 그것을 의원들에게 수행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통령제의 옳은 모습이다.

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정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 미국 국회의원들과 달리 우리 의원들은 왜 소신 없는 거수기로 비칠까. 그것은 의원들이 당론이라는 족쇄에 잘못 묶여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 아래서는 어느 때라도 행정부를 불신임해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원들이 지역구민의 뜻, 즉 여론을 무시하고 당론을 따르더라도 국민의 의사는 궁극적으로 언제나 실현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다르다.

임기 동안 대통령을 바꾸지 못하는 대통령제 아래서 국민은 그들의 뜻을 국회의원을 통해 표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원으로 하여금 여론을 무시하고 당론을 따르도록 하는 우리의 현 제도와 관행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며 국민의 의사 표출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다.

당에는 크게 선거기능.충원기능.정책기능의 세가지 임무가 있다.

대통령제 아래서의 당은 이중 선거기능과 충원기능만 수행하고 정책기능은 대부분을 의원들에게 주어야 한다.

또 의원들을 당론이라는 족쇄로부터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 의원들은 영원히 '거수기' 내지 '빈둥빈둥' 하는 존재로 국민에게 비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의원들만 탓하지 말고 제도를 탓해 볼 때다.

전성철(국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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