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논술경시대회]고등부 최우수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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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개인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고체계가 건전하고 합리적이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개개인의 사고체계가 바람직할 때, 그들은 사회를 바라보는 올바른 패러다임을 지니게 되며, 이는 작게는 한 인간의 정신적 성숙을, 크게는 사회 발전의 동기를 제공하게 된다. 이처럼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며, 어떠한 글이 명문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 충족시켜야 할 요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박지원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비록 그가 처한 당시의 상황이 오늘날의 현실과 다른 점이 없지 않으나, 실학 사상에 기초한 그의 주장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좋은 글이 되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정확성과 진실성을 제시한다.

그는 '아무리 진술의 논리가 명쾌하고 정직하다 하더라도 다른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승소하겠습니까?' 라고 하여,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개인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가 힘들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글의 진실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현학적인 태도를 버리고 명료한 글쓰기를 할 때에야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의사소통에 있다.

즉,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그로 인해 어떠한 행동이나 사상의 변화를 유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인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자기 논리만을 강요하고, 지적 자만심으로 인해 너무 거창한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면, 그 글은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게 되며, 폐쇄적인 것으로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논거를 확충하여 정확성을 확보하고, 논의에 적절한 범위를 설정하여 진실성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했다고 해서 바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의 정확성과 진실성은 범상한 글에서 명문까지의 모든 글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필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필요 조건' 을 뛰어넘는 '충분 조건' 을 역시 박지원의 저서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박지원은 '녹천관집 서' 에서 '내용상 같다는 것은 정신이요, 형식상 같다는 것은 외피이다. ' 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우리가 고인들의 명문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창조 정신과 개척 정신이지, 글 자체의 형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즉, 어떤 글이 좋은 글이냐에 대한 대답은 결국 글에 대한 글쓴이의 개입 여부로 귀결되는 것이다.

박지원은 고문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집필 태도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있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주장을 하였다.

고인들의 명문도 사실은 그 당시의 주류를 거스른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이 많으며, 고인들의 이러한 개척 정신은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그들의 글에 얽매여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정신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좋은 글의 충분 조건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즉, 좋은 글은 글 전체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쓴이의 개성적 문체와 창의성이 잘 드러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글 자체의 진실성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개방적인 태도 또한 필요로 한다.

박지원이 '공작관문고 서' 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 글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는 것은 글쓴이의 필력 향상은 물론이고 글 자체에 대한 깊은 해석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태도이다.

독자가 글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글쓴이가 그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글의 내용과 형식에 관한 더 심오한 논의가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그 글이 지닌 참된 의미를 탐구하고 재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어 공용화론을 다룬 한 책이 지식인들 사이에 열띤 비판과 옹호 논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우리의 민족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의 좋은 예라고 하겠다.

결국 좋은 글의 요건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글쓰기의 정도 (正道)에서 벗어나지 않은 창의성과 개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정도 (正道) 라는 것은 글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말한다.

즉,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의 정확성과 진실성에 근거한 보편성이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만을 무리하게 추구하다 보면 글 자체가 진부해져 발전적인 논의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글의 특수성이라고 볼 수 있는 글쓴이의 개성적 문체와 창의적인 내용이 글의 보편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발현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요건을 갖춘 글이 다양한 논의와 해석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것이 지닌 참된 의미와 가치가 확인될 때에야 우리는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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