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최승희 무용극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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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승희의 무용극 영화 '사도성의 이야기' 발굴이 요즘 장안의 화제쯤 된다.

굳이 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화제가 아무래도 박세리의 골프 우승보다는 덜 대중적일 듯한데, 본지의 특종이라고 해서 과장하지 않느냐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도성' 은 최승희라는 먼지 낀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 근대춤의 어머니' 의 실체를 처음으로 온전하게 드러낸 우리 문화사의 귀중한 사료라는 데에는 오해나 과장의 소지가 없을 것이다.

이 개가는 본지 김석환 모스크바 특파원의 4년여 추적의 결과임은 이미 보도된 바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기자정신이 아니라 그가 모스크바 아르히브 (문서보관소)에서 '사도성' 추적의 첫 단추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문서와 자료의 보존이야말로 역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확충하고, 재해석케 하는 출발점이라는 지극한 상식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올봄 세계 최대규모의 뉴욕 메트로폴리턴 박물관에 처음으로 한국의 독자 부스가 생겼다고 기뻐했지만, 이 박물관 수장고에는 벌써 옛날부터 우리의 문화재는 물론 왕자표.말표 고무신까지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 자료를 그들은 한국을 해석하는 한 통로로 이용하고, 나아가 세계문화사를 정리하는 사료로 사용할 것이다.

세계영화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의 모태가 바로 영화자료보관소, 이른바 시네마테크라는 것도 상식이다.

이 영화의 창고에서 장 뤼크 고다르니, 프랑수아 트뤼포니 하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의 작품을 배우고 비판하다 마침내 몸을 일으켜 '새로운 영화' 를 세계영화사에 새겨넣은 것이다.

고개를 돌려 우리의 남루한 현실 (이것도 상식이다) 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정부문서보관소의 상태가 어떤지는 필자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옛날은 고사하고 지난번 정권교체 과정에서 문서를 고의로 폐기한 혐의가 있다는 말까지 나온 이 나라다.

학자들의 그 정성어린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해체해버린 것도 유물보다는 껍데기 (총독부)에 더 생각이 미친 처사였다.

영상시대라는 오늘, 우리의 시네마테크라는 것은 존재하기나 하는가.

고다르가 시네마테크의 자식이었던 것처럼 60, 70년대 서울에는 '프랑스문화원의 아이들' 이 존재했었다.

일반 영화관 외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영화를 향한 갈증을 풀 수 없었던 그때, 일단의 아이들은 프랑스문화원 지하의 그 작은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그들의 처지만큼이나 지리멸렬한 영화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문제는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어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영화동호인들이 힘들여 수집한 그나마의 비디오테이프로 여는 상영회조차 불법이니 뭐니 하며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료를 모아주지는 못할망정 쫓아내는 꼴이다. 소박하나마 우리에게도 국립영상자료원이란 곳이 있다.

60년대 10년간 한국영화 생산은 1천5백여편. 그중 5백여편이 이곳에 보관돼 있다.

필름을 밀짚모자 장식테로 쓰던 풍토에서 그나마 대견한가.

이 영상자료원이 '사도성' 을 특수처리해 영구보존하겠다는 제의를 본사에 해온 것은 고무적이다.

우리에게는 사관 (史官) 과 사초 (史草) , 사고 (史庫) 의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의 나들이길. 임금이 지존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급히 용변을 보자 사관이 이를 기록했다.

임금이 "어허 그런 것까지 쓰느냐" 고 하면 사관은 "어허 그런 것까지 쓰느냐고 하셨다" 고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 기록이 혹시 타거나 없어지지 않을까 해서 전국의 오지 네곳에 사고를 설치했던 것이다.

사료의 가치란 그 사료가 나온 당대와 후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요즘 공보실이 국민홍보가로 애용하는 김민기의 노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가 그렇다.

80년대 민중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만든 이 비장한 느낌의 '금지곡' 이 IMF시대를 헤쳐가는 '새마을 노래' 가 될 줄을 그 누가 상상했을 것인가.

주위를 보아도, '성공하는 사람의 몇가지' 유의 책을 봐도 성공한 사람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메모하는 습관이다.

그들은 그때그때 느낀 바와 알게된 바를 차곡차곡 챙겨 적절하게 활용한다.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헌익(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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