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군함 퍼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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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군사 (軍事) 전문가들은 전쟁에 있어서 군함의 역할과 비중이 새롭게 인식되고 그에 따른 기술적 혁신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19세기 중엽의 크림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이었다고 분석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패전국들의 중요한 패인 (敗因)가운데 하나가 해군력의 열세 때문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은 남북전쟁을 계기로 해군력의 급속한 성장을 이룩함으로써 계속 군사력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 차례에걸친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미 해군의 활약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앞서 1898년 쿠바문제를 둘러싼 스페인과의 전쟁과 1903년 파나마운하 독점권 확보를 위한 콜롬비아와의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군함들의 종횡무진한 활약 덕택이었다.

하지만 미 군함의 막강한 위용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한국전쟁중의 인천상륙작전 때였다.

'크로마이트 작전' 이라 명명된 이 작전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미 군부에서도 '승률 (勝率) 5천분의1에 불과한 도박' 이라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회의론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작전은 9월15일 새벽에 시작돼 45분만에 월미도를 점령함으로써 성공의 서막을 장식했다.

외곽에서 순양함들의 함포사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용맹한 구축함들이 적의 포대 바로 앞까지 미끄러져 들어갔던 것이다.

'거북선의 명예' 를걸머지고 있는 우리 해군은 6.25전쟁 당시만 해도 낡은 구식 함정 33척을 보유한 수천 병력의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그 이후에도 구축함시대에 접어든 것이 63년이었고, 국산 고속정시대에 들어선 것이 72년이었으니 그 발전속도가 매우 더딘 편이다.

하지만 속도가 더딘 만큼 내실은 기해 왔다는 안팎의 평이다.

군사적 목적 외에도 해양에서의 주권과 국가이익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해야 하니 국민의 관심이 쏠릴 것은 당연하다.

건군 50주년을 맞아 10월 12일부터 6일간 부산과 진해에서 열리는 국제 관함식 (觀艦式) 은 그동안 우리 해군과 군함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를 눈여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해군력이 막강한 미국.러시아.일본.영국.프랑스 등 강대국의 군함들과 어깨를 나란히한 우리 군함들이 위용을 뽐낸다니 장관 (壯觀) 을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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