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前총리 대장상 영입의미…경제 '구원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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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자민당총재가 16조엔의 경기부양책이나 6조엔의 영구감세보다 더 효과적인 칼을 빼 들었다.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78) 전총리를 신임 대장상으로 영입한 것이다.

미야자와가 침몰하는 일본경제의 구원투수로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주가와 엔화는 강세로 돌아섰다. 일본언론들도 "현상황에서 가장 적임자" 라며 긍정적이다.

총리를 역임한 정치거물이 부총리 겸 대장상에 기용된 것은 전후 처음. 30조엔에 이르는 불량채권과 전후 (戰後) 최악의 불황을 맞은 일본의 위기의식이 미야자와를 불러 낸 것이다.

그의 등장은 일본 및 아시아 경제위기 해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미국과도 긴밀한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치가 가운데 영어에 그만큼 능통하고 경제지식을 갖춘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3월 뉴욕을 방문했을 때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장관이 비밀리에 호텔로 찾아와 "감세규모와 경기부양책을 확대하도록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를 설득해 달라" 고 부탁한 일도 있다.

미야자와가 일본경제의 조타수로 등장하면서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의사결정 라인도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부장관 -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신原英資) 대장성 재무관으로 이어지던 기존 라인에서 미야자와 - 루빈 장관으로 옮겨 갈 전망이다.

'도쿄 (東京) 대가 배출한 3대 천재' 로 꼽히는 미야자와는 줄곧 엘리트 코스를 걸어 온 인물. 대장성 관료를 거쳐 60년대 이케다.사토 (佐藤) 내각 당시에는 경제기획청 장관.통산상을 지냈다.

그러나 총리.대장상 시절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92년 총리때는 대형 뇌물사건인 사가와규빈 (佐川急便) 스캔들과 정치개혁법 제정을 둘러싼 혼란으로 자민당 단독정권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비운도 겪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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