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50%까지 대출 … 자금계획 다시 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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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6일 금융당국이 전격적으로 대출규제를 발표한 것은 그동안의 구두 경고가 잘 먹혀 들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중순부터 대출을 줄일 것을 은행에 당부했다. 그러나 지난달에만 주택담보대출이 3조8000억원이 나갔다. 1~5월 월평균(3조원)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올 들어서 주택담보대출이 꾸준히 늘었지만 당초 금융당국은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전국의 투기지역이 해제되면서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은행권 대출을 갈아타는 수요가 많았다고 봤다. 또 경기침체로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수요도 많았다. 감독당국이 강력한 대출규제에 나서지 않은 이유다. 그러다 주택담보 대출 가운데 집을 사기 위해 빌리는 대출 비중이 1월 46%에서 4월에 50%를 넘어서더니 5월에는 55%로 높아졌다. 시중 유동자금이 본격적으로 주택시장으로 몰릴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집값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크게 오른 건 아니다. 국민은행연구소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재건축 수요가 많은 과천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18.5%나 올랐다. 강동(6.4%)·강남(3.8%)·양천(3.1%)도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나머지 지역의 상승세는 미미했거나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재성 금감원 은행서비스본부장은 “일부 지역에서 거래가 늘고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 여타 지역에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며 “사전에 집값 상승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지역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득과 이자에 따라 대출이 결정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강화하는 것은 시장에 충격이 너무 크고 아직 그럴 단계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감독당국은 이번 조치를 은행권에 적용해보고 효과를 봐가며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 본부장은 “보험·저축은행의 대출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주택 담보인정비율(LTV) 강화 조치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인호 금감원 가계신용전담반장은 “수치화하긴 어렵지만 과거 LTV 규제를 강화했을 때 대출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며 “은행 대출이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은행들도 당분간은 대출 심사를 깐깐하게 할 계획이어서 종전의 LTV를 꽉 채워 돈을 빌리려던 사람들은 자금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익명을 요청한 시중은행 개인여신 담당자는 “감독당국이 워낙 민감해 있어 당분간 대출을 크게 늘리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규제강화 조치에 부동산 시장은 한숨이다. 지규현(GS건설경제연구소) 박사는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노력에 정부 스스로 찬물을 끼얹은 꼴”이라고 말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규제 강화에 따라 부동산시장이 다시 냉각돼 하반기 경제 성장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업계는 규제가 강화된 이상 미분양 물량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편 일부에선 규제가 미지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권의 평균 LTV 비율은 47%로 이번 조치가 시행돼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금감원은 6억원 이하 아파트를 담보로 한 10년 이상의 장기 대출은 투기가 아닌 실수요로 간주해 이번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금감원이 이처럼 다소 느슨해 보이는 규제를 내놓은 것은 한 번에 강력한 투기대책을 시행하면 경기 전반에 충격이 미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준현·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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