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박·마약…한국은 중독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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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단중독 사목위원회 허근 신부(右)와 김태광 신부가 각종 중독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성철 신부는 개인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단(斷)중독 사목위원회'에선 한때 '주(主)님'이 아닌 '주(酒)님'에 빠졌던 신부 세 명이 '중독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술.도박.쇼핑.게임 등 우리 사회의 온갖 중독을 끊겠다(斷)고 나선 것이다. 세 신부는 애주를 넘어 탐주(貪酒)를 하다 병원 치료를 받고 알코올 중독을 극복한 경험이 있다.

"중독 경험자만이 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다"라고 믿는 허근(52).김태광(38).박성철(38) 신부.

위원장 허 신부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8병, 맥주 24병을 마셨던 폭주가였다. 1982년 해병대 군종신부로 배치되며 처음 술을 마셨던 그는 한때 세끼 식사를 술로 때울 정도였다. 결국 그는 98년 병원 치료를 받았고 99년 알코올 사목센터를 열었다. 술.마약.사이버 등 날로 심각해지는 각종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 2002년 조직을 단중독 사목위로 확대했다.

김 신부의 주량도 대단했다. 사제복을 입기 전 한양대 무기재료학과를 다녔던 그는 학창 시절 친구와 둘이 소주 한 박스(30병)를 해치우기도 했다. 호방한 성격에 신자와 잘 어울렸던 그는 자연스럽게 술과 가까이 지냈고 결국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비슷한 사정으로 치료를 받았던 박 신부와 함께 지난해 단중독 사목위에 합류, 지금은 각종 중독자의 건강.인성 회복을 위해 뛰고 있다.

한때 술로 시련을 겪은 그들이 보는 한국 사회는 매우 심각하다. '중독 천국''중독 불감증 사회'라는 것이다. 일례로 로또는 둘째 치고 24시간 북적대는 전자경마장을 어떻게 이해하겠느냐고 물었다. 카드빚이 쌓인 신용불량자도 마찬가지다.

"중독자를 포함해 항상 술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700만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치료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고작 6000명에 불과합니다."(허 신부)

"중독은 난치병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숨기려 들어요. 자기제어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죠.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박 신부)

문제는 우리 사회에 중독 치료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 병원.복지시설의 전담 기구에도 관계 분야를 제대로 전공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목위 측은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하이라인 커뮤니티 대학과 손잡고 '약물치료 전문가(CDP) 자격증 취득을 위한 특별 과정'을 처음 열고 오는 30일까지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미국 교수진이 와 직접 강의.지도한다.

"중독자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자동차와 같습니다. 의지가 박약하다고 꾸짖어봤자 소용없어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혼자 걸을 수 있나요."(허 신부) (www.sulsul.or.kr), 02-2277-2632.

글.사진=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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