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일본 20∼30대의 위기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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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6년 한국 총선때 빗나간 국내 여론조사를 한껏 조롱했던 일본 신문들이 14일자 조간에 여론조사와 관련한 해명성 기사를 실었다.

12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 사전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획득 의석수가 실제와 15석 이상 차이난 배경에 관한 것이다.

신문들은 당초 자민당 획득 의석수를 59~63석으로 예상했지만 뚜껑을 연 결과 44석에 그쳤다.

신문들은 이에 대해 당초 지지 정당.후보가 없었던 이른바 '무당파 (無黨派)' 가 야당에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확하기로 이름난 일본의 여론조사가 무당파에 허를 찔린 것이다.

선거후 한 신문 조사결과 95년 선거에서 기권했던 투표 참가자 가운데 20, 30대의 비율은 35%와 26%를 차지했다. 선거전 투표 여부와 표심 (票心) 을 감추고 있었던 20~30대의 반란이 자민당 참패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일본의 20~30대는 "정치는 누가 해도 마찬가지" 라고 비아냥거리며 선거때 늘 뒷짐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전면에 나섰다.

50~60년대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던 '안보 투쟁' 이후 30여년만이다.

무당파 20~30대의 투표 참가 이유는 다양하다.

14일 아침에 만난 택시 운전기사 이시하라 히데오 (石原英雄.38) 는 "솔직히 수입이 자꾸 줄어든다.

정권을 한번 바꿔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야당을 찍었다" 고 말했다.

13일 밤 민간방송에 나온 20~30대들은 거침이 없었다.

"자민당이 하는 것은 전부 헛스윙이다" "지금 정권을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진다" …. 한마디로 위기감이다.

자민당이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재 후임을 투표로 뽑기로 하고, 선거에서 대약진한 민주당 간 나오토 (菅直人) 대표가 "딱 한번 주어진 기회" 라고 되뇌는 것도 무당파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일본의 20~30대가 다시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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