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퇴출' 사업은 '잔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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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퇴출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중 대기업 계열 주요 업체들은 대부분 모 (母) 기업에 합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만 퇴출이지 실제로 관련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는 셈이어서, 퇴출로 부실을 도려내겠다는 본래 취지를 흐리게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본지가 지난달 퇴출대상으로 선정된 55개 기업중 30대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일수록 모기업 또는 다른 계열사로 합병되는 곳이 많았다.

5대 그룹의 경우 퇴출대상 19개중 11개가 합병절차를 밟고 있거나 합병을 추진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그룹의 우량 모기업일수록 퇴출 기업을 인수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동반부실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삼성시계 등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잔챙이' 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퇴출관련 법.제도 정비가 늦어짐에 따라 일부 기업은 퇴출 방식을 확정하지 못한 채 혼란을 겪고 있으며 해태제과.한일합섬 등의 경우는 퇴출 여부와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 모기업으로의 합병이 주류 = 4개사씩 퇴출대상에 오른 현대.대우.LG그룹은 3개씩을 주계열사에 합병시킬 계획이며 SK 역시 3개중 2개를 같은 방식으로 정리키로 했다.

쌍용.뉴코아 역시 합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거래은행들도 합병이 청산때보다 손실이 적다며 묵인해 주는 상황이다.

다만 삼성그룹은 퇴출대상 4개사를 모두 매각 또는 청산할 방침이다.

청산 대상으로는 삼성시계 (자본금 8백65억원) 와 동아엔지니어링 (자본금 60억원) 정도가 눈에 띌 정도고 나머지는 자본금 수십억원대의 중소기업. 그러나 제3자 매각을 추진중인 대상기업 중에는 상당수가 제대로 팔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청산기업은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55개중 23개가 합병을 진행중이고 19개는 매각, 11개가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실제 상황은 다소 차이가 났다.

◇ 고용문제가 불씨로 남아 있다 = 대다수 그룹들은 퇴출기업을 합병하더라도 서서히 고용조정을 하겠다는 입장이라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당장은 인원.사업을 그대로 흡수하겠지만 단계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제3자 매각의 경우도 원매자가 인수.합병 (M&A) 방식보다 고용승계가 필요없는 자산인수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각 그룹 구조조정담당자들은 전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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