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미디어법 결론 못 내면 한국은 미디어 빅뱅서 낙오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방송통신위원회의 하반기 전략회의가 30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렸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통해 미디어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30일 “있지도 않고, 의지도 없는 언론 장악이라는 허상을 붙잡고 정치가 산업의 손발을 묶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촉구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이날 오전 방통위에서 개최한 ‘2009 하반기 전략회의’에서 “핵심 정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면 우린 세계적 추세에 뒤처지게 된다”며 “이젠 미디어법의 결론을 맺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방송정책 책임자로서의 절박한 심정을 10여 분간 토로했다.

그는 “어제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봉쇄로 상임위 회의가 무산됐다”며 “‘언론 악법 반대’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회의장 앞에 앉아 있는 민주당 의원들을 보며 참기 힘든 답답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또 “여야는 3개월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법안을 논의했지만,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 결국 허송세월을 했다”면서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허탈하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디어법은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당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세계 변화와 기술 발전에 눈 감으면 안 된다”며 “1980년대 낡은 유산인 칸막이 규제로 미디어 빅뱅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 초 미디어 선진국들을 돌아보며 이들이 미디어 융합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국가의 장래를 걸고 정책을 준비 중인 사실을 발견했다”며 “미디어 빅뱅은 자유로운 경쟁체제에서 비롯된다는 점도 실감했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강력한 방송 소유·진입 규제 체계를 갖고 있다. 80년 등장한 신군부가 방송 통제를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구조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 말까지 신문·방송 겸영은 허용됐다. 그러나 언론 통폐합으로 겸영은 금지됐고 방송은 독과점 체제에 들어갔다. 그 구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민주당 전병헌· 선진과 창조의 모임 이용경 의원(왼쪽부터)이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회의서 미디어법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반면 선진국들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춰 정책과 제도를 유연하게 바꿔왔다. 언론 규제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프랑스도 최근 과감한 규제 완화로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키우는 일 등이 국가 정책 목표로 정해졌다.

최 위원장은 “과거 우리는 디지털 방송 전환, IPTV 도입 등이 지연돼 관련 산업 발전이 경쟁국보다 늦어진 경험이 있다”며 “이 런 일들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MBC 등 일부 방송의 ‘발목 잡기’로 디지털 전환이 4년 가까이 늦춰진 사례를 예로 들면서 미디어법 정치 공방의 부작용을 걱정한 것이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최근 최 위원장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국민이 질 좋고 다양한 방송을 더 즐길 수 있는데 왜 이데올로기 공방에만 빠져 있는지 안타깝다는 심경을 자주 밝혔다”며 “이날의 절박한 발언이 상징하듯 앞으로는 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이날 하반기 정책 방향으로 종합편성 채널 도입 등 13개 분야의 중점 과제를 확정했다.

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