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1977, 여름 뜨겁게 달구는 3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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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16면

22년 전 여름이다. 고교야구에 세 명의 굵직한 포수가 등장했다. 김경문·이만수, 그리고 조범현이었다. 그들 이름 앞에 ‘굵직한’이란 표현을 할 명분이 있었다. 그들은 그해 모두 팀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대회에서 최우수선수가 됐다. 행운의 숫자 ‘러키 세븐’이 겹친 1977년. 그해 고교야구에서 행운은 유난히 포수의 몫이었다.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15>

김경문은 5월 10일 시작된 제 1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비롯한 3관왕이었다. 무명 공주고를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끈 그는 타격상(15타수 7안타, 0.467), 최다안타상까지 거머쥐었다. 공주고는 대통령배 사상 첫 출전팀으로서, 충청도 연고 팀으로서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새 역사를 썼다.

6월, 그 뜨거운 성동원두의 영웅은 대구상고 이만수였다. 그는 6월 11일 시작된 제32회 청룡기 고교야구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비롯한 4관왕을 차지했다. 패자부활전 제도가 있던 당시 대회에서 이만수의 대구상고는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와 동산고를 1, 2차 결승에서 거푸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이만수는 1차전 역전 결승타를 비롯해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는 타격·최다안타·타점까지 휩쓸어 가장 빛나는 별이 됐다.

가장 무더웠던 8월. 전국 42개 고교 팀 모두가 참가한 제7회 봉황대기 고교야구(8월 8일)는 최다 관중(33만9216명), 최고 수입(1억3564만원)을 기록한 고교야구 역대 최고의 흥행 무대였다. 그 대회에서 충암고 포수 조범현은 에이스 기세봉과 배터리를 이뤄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5번 타자였던 그는 진흥고와의 결승에서 4회 말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리며 활약, 대회 최우수선수가 됐다. 충암고 창단 9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안겨준 활약이었다.

이렇게 대통령배-청룡기-봉황대기에서 각각 최우수선수로 활약한 포수 3인방은 82년 프로야구 원년에는 OB 베어스(김경문·조범현)와 삼성 라이온즈(이만수)의 포수로 대한민국 프로야구 첫 한국시리즈 패권을 겨뤘다. 현역 시절 이만수는 수퍼스타였고 김경문과 조범현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근성 있는 노력파였다.

그리고 2007년 여름.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나. 프로야구 순위 1, 2, 3위를 다투는 두산, SK, KIA의 사령탑(두산 김경문, KIA 조범현)이자 수석코치(SK 이만수)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이들의 경쟁은 그래서 더 볼만하다. 더욱이 원년 OB의 팀 동료이자 포지션 라이벌이었던 김경문·조범현 두 감독의 대결은 그 둘의 역사를 알고 보면 더 흥미진진하다.

마침 그해 여름으로부터 22년이 지났다. 그 숫자(22번)는 포수의 상징이어서 이만수와 김경문이 프로에서 달았던 번호이기도 하다. 이들이 벌이는 올해 여름의 승부가 더 뜨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족=삼총사 뒤에 달타냥? 이들을 ‘삼총사’로 부르기에는 이만수 코치가 김경문-조범현과 달리 감독이 아니라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이건 어떨까. 이만수 코치가 속한 SK의 사령탑 김성근 감독도 77년 그해 여름 성동원두를 누볐다. 그는 그해 조범현을 이끌고 봉황대기 첫 우승을 차지한 충암고의 감독이었다. 그럼 ‘77년의 세 남자’는 김경문-김성근-조범현으로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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