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교협 회장 퇴임 손병두 서강대 총장 “교육정책 규제·통제로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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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자율과 경쟁 교육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

서강대 손병두(68·사진) 총장은 24일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대학과 공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정책이 ‘규제와 통제’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4년간의 총장 임기를 마치고 27일 퇴임하는 그는 지난해 4월부터 맡아온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직도 물러난다. 그래서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등을 역임한 그는 서강대 ‘비(非)신부’ 출신 첫 총장으로 4년간 영어인증·강의평가·교수연구년제 등을 도입해 캠퍼스에 기업마인드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폐지 요구에 앞장서 ‘쓴소리 잘하는 총장’으로 불렸다.

-정부 교육정책을 ‘역주행’이라고까지 했다.

“자율형 사립고가 대표적이다. 학교를 다양화하고 평준화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였는데 로또식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했다. 학생 선발권이 없는데 어떻게 자율형 학교라고 할 수 있나. 학교에 자율권을 주지 않으면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

-사교육 대책을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등 직접적인 규제를 통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자율과 경쟁 취지와 상충한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지는 게 사교육이다.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자식의 부족한 공부를 보충해서 가르치겠다는 학부모 욕구를 어떻게 억누를 수 있나.”

-그러면 어떤 대안이 있나.

“공교육 정상화로 해결해야 한다. 교원평가제를 전교조 눈치 보며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실시해야 한다. 학교평가도 해서 못 가르치는 곳은 문 닫게 해야 한다. 비슷한 과목을 통폐합하고 핵심 과목(국어·영어·수학·과학) 위주로 교과과정도 개편해야 한다. 병의 근원을 치료해야지, 엉뚱한 처방을 하면 부작용만 생긴다. 공교육 살리기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 입시 자율화가 됐다고 보나.

“정부는 대학 입시를 대교협에 넘기고도 ‘3불’은 유지하라고 주문한다. 이게 무슨 자율인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기여입학제를 제외하고 ‘2불’(본고사와 고교등급제)은 깨야 한다. 그렇게 얘기했는데, 참 아쉽다.”

-정부가 여전히 규제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대입 자율화 추진을 위한 교육협력위원회에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를 의무적으로 넣게 했다. 교과부가 발을 담그고 간섭하겠다는 얘기다. 권한을 줬으면 믿고 맡겨야지 ‘저놈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며 미덥지 않게 여기면 결코 자율화를 이룰 수 없다. 입시 문제는 대학이 특성에 맞게 알아서 하면 된다.”

-대학이 책임은 지지 않고 자율만 요구하는 게 아닌가.

“대학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입시를 치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문제가 생기면 대학과 대교협이 책임져야 한다.”

-입학사정관제가 올해 입시의 관심사다.

“입시 다양화를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입시의 전부인 것처럼 과대포장됐다. 잠재력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수학 능력을 봐야 한다.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기업인 출신으로 대학을 운영하며 느낀 점은.

“앨빈 토플러는 ‘기업의 변화속도가 100마일이라면, 대학은 10마일’이라고 했다. 한국 대학은 3마일 정도 되는 것 같다. 기업은 효율을 우선시하는데 대학은 절차를 중시하더라. 처음엔 명함 한 장 만드는 데 열흘 걸렸다. 대학도 정말 변해야 한다. 대학의 숙제다.”

글=정현목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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