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떤 '스타'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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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화예술 초창기인 20세기 초반에는 영화제작자들이 연극배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무대에서 내로라 하던 인기배우들은 거의 모두 영화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막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형편없는 대우를 감수하고 인기배우들에게 덤으로 얹혀갔던 무명배우들과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신인배우들이었다.

제작자 들은 소위 '스타 시스템' 을 구축해 이들을 인위적으로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지난 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데뷔 3~4년만에 개런티가 수천~수만배나 오른 배우들이 부지기수였다.

밑바닥 삶을 전전하다가 지방의 연극배우를 거쳐 30년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한 클라크 게이블이 좋은 예다.

전성기 때의 그는 매주 1만통 이상의 팬레터를 받았으며 팬클럽도 75개에 달했다.

스타가 영화를 좌지우지하게 되자 제작자와 배우의 입장은 반전됐다. 제작자들의 수입보다도 많은 엄청난 개런티를 요구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감독.시나리오.상대역을 선택할 권리까지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작자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스타를 기용하지 않은 영화가 예외없이 흥행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도산 위기에 빠졌던 파라마운트.유니버설.20세기 폭스 등 굵직한 영화사들이 슈퍼스타의 기용으로 구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타들은 제작.감독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알랭 들롱.존 웨인.버트 랭커스터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스타들의 본령 (本領) 을 넘어선 그같은 활동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새삼스럽게 세계 영화사 (史) 의 그런 단면들이 떠오른 까닭은 엊그제 세상을 떠난 김진규 (金振奎) 씨가 연극배우 출신으로 영화에 데뷔해 제작.감독까지 겸했던, 우리로선 흔치 않은 스타였기 때문이다.

90년대 영화제작의 실패가 연기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게 했으니 만약 그의 인생에서 그 과정이 생략됐던들 그는 오늘까지도 중후한 연기, 온화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금세기 중반까지의 세계 영화사가 보여주듯 그가 제작에까지 뛰어든 것은 불가피한 전철 (前轍) 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불멸의 스타' 가 대개 연기자로서의 본령에 전념했던 사람들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죽음이 새삼 애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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