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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새 금융규제 조치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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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해 우리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금융 시장이 사실상 붕괴돼 구제조치가 취해졌다. 대공황 이래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경이로웠던 건 이 사건이 외부 요인으로 촉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 문제가 곪아터졌고 급기야 전 세계 경제로 파급됐다. 금융시장은 자정 능력이 있다는 게 그간의 상식이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뜻밖이었다.

이제 시장이 완벽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하지만 감독 당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도 실수하는 인간일 뿐 아니라 관료적이고 정치적 영향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규제는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금융 규제 개혁은 다음의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우선 금융감독기관은 자산시장의 버블이 너무 거대해지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버블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감독 당국도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해도 금융 당국은 이 소임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 당국이 만약 틀린 결정을 내린다 해도 시장의 피드백이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그러면 그 실수를 바로잡으면 된다.

둘째, 자산시장 버블을 통제하기 위해선 통화량뿐 아니라 대출 제한 조치를 통해 돈줄을 죄어야 한다. 지불준비금과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강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부동산 버블을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리스크에 따라 차등화할 필요도 있다.

리스크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장이 각종 리스크를 상쇄해 리스크 제로를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전통적 이론은 규정한다. 따라서 시장 전체의 리스크와 개인 투자자가 직면하는 리스크와 차이가 없다. 각자가 리스크에 잘 대처하기만 한다면 감독 당국이야 편한 노릇이다. 하지만 시장은 불균형에 빠지기 쉽다. 개인 투자자들은 자신의 리스크를 남에게 전가할 수 있다고 여기고 이를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감독 당국은 같은 입장일 수가 없다. 너무 많은 투자자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면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구조적인 시장 리스크가 발생한다. 이번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위기의 반복을 막자면 은행 보유 증권에 현재보다 훨씬 높은 리스크 등급이 매겨져야 한다. 파생상품 거래는 적어도 주식 거래 수준의 엄격한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보유 채권의 부도 위험만 따로 떼어내 보험처럼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는 반드시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은행이 CDS를 사들이면 부도 가능성이 낮아지는 대신 보험료 성격의 수수료를 지불하게 된다. 부도 위험이 높은 채권일수록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CDS 자체로는 큰 위험성이 없다. 하지만 CDS를 증권사·투자은행에 되파는 게 반복되면서 수익과 함께 리스크도 크게 늘어난다. 이 때문에 AIG가 무너졌으며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보호 상태로 내몰렸다. CDS를 매입하는 건 누군가의 생명보험을 들어준 뒤 그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되는 것과 같다. 감독 당국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방치해선 안 된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
정리=정용환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