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 읽기] 추억 … 성찰 … 일상에서 길어낸 ‘구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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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름다운 우리 수필2
 이태동 엮음, 문예출판사, 313쪽, 1만원

시인·소설가·학자·화가 등 내로라하는 21인의 명수필을 하나로 엮었다. 이희승, 이양하, 이상, 고은, 박이문, 이어령, 박경리, 이청준, 천경자···. 멀고 높게 다가오는 이름들이지만, 수필로 만나니 살이 스치는 듯 정겹다.

“성장·노쇠의 과정은 우리가 느끼는 궁둥이의 무게에 정비례한다···공자께서도 (불혹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무거워진 궁둥이의 유력한 후원을 얻었으리라.”(이양하의 ‘늙어가는 데 대하여’) “잠방이 하나만 입고 양말까지 벗어버리고 재어보니, 꼭 5척 0촌 2푼···거리를 다니다가 키 작은 사람을 발견하면, 기어이 따라가서 내 키와 넌지시 견주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난쟁이 아니고는 내 키보다 더 작은 이가 있을 리 없지만··.”(이희승의 ‘오척단구’) 누가 이를 헛기침만 할 것 같은 학자의 속내라 할까.

과거에 대한 향수가 물씬 흐르는 구절도 있다.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낙원이다···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한 페이지···몇 살이 돼도 그 장을 펼쳐보고 싶어진다.”(전혜린의 ‘홀로 걸어온 길’)

수필은 곧 삶이다. 따스하고 아스라한 추억과 차가운 성찰이 맞닿은 데 맺힌 한 방울 주옥(珠玉)이다. 책 첫머리에서 ‘한 권만으로는 독자들의 목마름을 넉넉히 축여주기 부족했다’고 한 엮은이의 고백에 공감이 가는 책이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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