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10 2만 명·2008년 6·10 8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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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11일 오후, 서울광장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군데군데 파인 잔디밭을 제외하고는 전날 대규모 집회(6·10 행사)가 열린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6월이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가네요.”

올해 6·10 기념 행사는 당초 우려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치러져 지난해 6·10 행사와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지난해 6·10 행사右는 경찰 추산 8만 명, 주최 측 추산 70만 명의 인파가 몰려나와 세종로와 태평로까지 가득 메웠지만 같은 장소에서 열린 올해 행사는 교통을 차단했음에도 태평로가 비어 있다. 경찰 추산 2만2000명, 주최 측 추산 15만 명이 참석해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두 사진 촬영 위치는 다르다. 본지는 지난해처럼 프라자 호텔 14층에서 촬영을 시도했으나 호텔 측의 거부로 인권위 건물에서 사진을 찍었다. [김상선 기자, 중앙포토]

광장을 지나던 회사원 한상일(45)씨의 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조용한 6월’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총파업·사회 혼란·과격 시위…. 여러 불안 요소가 엉킨 뜨거운 여름을 전망했다.

“6월 ‘2009 국민 촛불대행진’을 시작으로 투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겠다.”(2월 3일·민주노총 기자회견)

“현 정권은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5월 30일·한 시민단체 논평)

“그냥 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가 이어져 제2 촛불이 올지 모른다.”(6월 4일·서울경찰청 간부 ‘서울광장 봉쇄’ 이유에 대해)

하지만 6월의 분수령인 ‘6·10’이 조용히 끝났다. 대부분의 참석자는 밤 10시 넘어 공식 행사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떴다. 소수가 남아 경찰과 충돌했을 뿐이다. 11일 시작된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역시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평택항 등에서 운송 거부 사례가 발생했지만 큰 물류 차질은 없었다. 격렬한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물류대란이 벌어지던 지난해 이맘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예상보다 차분한 6월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추모와 정치·이념 투쟁을 구분하고 있다. “조문 열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도, 이를 알아챌 만큼 국민은 영리하다”(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맞물려 조문 분위기가 일시적으로 증폭됐다가 급속도로 정상화되고 있다”(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집회 동원력이 약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내부 성폭력 파문과 소속 노조들의 탈퇴 도미노로 세 집결이 여의치 않았다. 6·10 서울광장 집회에 참여한 소속 노조원은 1100여 명(쌍용차 노조원 500여 명·정부 추산)에 불과했다. 대학생들의 참여 역시 저조했다. 대학 깃발마다 수십 명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회 전반이 ‘일자리 나누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정치적 구호·파업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힘들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은 “당장 먹고 살기 바쁜 경제위기인데, 정치투쟁에 뛰어들 조합원·직장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이슈는 지난해 촛불과 사안의 성격이 다르다. 명지대 신율(정치외교학) 교수는 “개인 건강에 관한 사안인 촛불과, 민주주의·권위주의 같은 추상적인 지금의 의제는 호응도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봤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과) 교수는 “6·10 집회가 조용히 끝났다고 현 정부가 안심해선 안 된다. 국민과 꾸준히 대화하지 않으면 민심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규연·임미진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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