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선발 3개 투신에 한남투신 5천억 지원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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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거평그룹 계열사인 한남투자신탁증권의 예금인출 사태와 관련, 정부가 한국.대한.국민 등 선발 3투신에 긴급 자금지원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정부가 아직도 관치 (官治) 금융을 일삼으며 대외신인도 추락을 자초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13일 한남투자증권에 문제가 생기면 투신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내세워 선발 3투신에 5천억원을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선발 3투신 사장들이 이날 긴급 모임을 갖고 한남투자증권 보유 채권을 5천억원어치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선발 3투신의 한 관계자는 "도대체 A은행이 어려울 때 B은행이 도와주는 경우가 있느냐" 며 "우리도 형편이 어려운데 정부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시장 사정이 워낙 안좋아 마련한 궁여지책" 이라며 "그러나 구조조정의 기본원칙과는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 이라고 시인했다.

한편 거평그룹은 다른 모든 계열사를 처분하더라도 지난 12일부터 환매사태를 겪고 있는 한남투자증권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거평그룹 나선주 (羅善柱) 부회장은 13일 금융감독위원회를 방문, "그룹의 부도로 한남투신이 환매사태를 맞고 있으나 그룹이 보유중인 거평시그네틱스.제철화학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이스라엘 이스카아에 매각한 대한중석의 초경합금 사업 매각자금을 들여서라도 한남투신 증자에 지원하겠다" 고 밝혔다.

한남투신은 모기업 거평그룹의 자금불안에 따라 동요한 고객들이 한꺼번에 환매를 요청, 지난 12일 2천2백억원을 환매한데 이어 13일엔 1천6백억원을 환매했다.

羅부회장은 "자금시장 불안에 대비해 5천억원의 자체자금을 마련해 두고 있어 고객 환매에 계속 응할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3천8백억원이 이틀만에 환매자금으로 쓰여 한남투신의 환매사태는 14일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감독원 관계자는 "한남투신의 수탁고는 4조4천억원으로 이중 10%가량이 빠져나가 아직까지 영업정지 등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 고 밝혔다.

고현곤·김동호 기자

〈hkk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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