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틴틴]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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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이레
264쪽, 9000원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열심히 한 일은 부라보콘을 먹으면서 오후 2시부터 하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그 해 나는 ‘주간야구’에서 부록으로 끼워준 기록지에다가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 경기를 거의 대부분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은 나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게 된 친구 하나를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그 친구는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와서는 전날 경기를 기록하지 못했다며 기록지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대신에 야구 카드를 몇 장 주겠노라고. 괜찮은 거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서로 친해졌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 당시에 야구 카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초코파이를 박스째 구입하거나 부라보콘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박스에는 초코파이의 숫자만큼, 부라보콘에는 하나씩 야구 카드가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선수들의 방어율·최고 구속·탈삼진횟수 등이 적혀 있었다. 숫자와 기호가 적힌 기록지만으로 경기의 전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야구팬에게 이 숫자들에는 한 인간의 모든 인생이 집약돼 있었다.

일본 소설가 오가와 요코의 작품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다루는 숫자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이 소설은 1975년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라고는 80분 분량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와 그를 돌보는 파출부 모자가 숫자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80분이 넘어서면 그 전의 기억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수학박사에게 숫자는 영원히 기억을 담아두는 도구다. 예컨대 우리는 어떤 특정한 숫자에 반응한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라든가 생일이라든가. 박사는 파출부의 생일이 2월 20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대학시절 자신이 학장에게 받은 시계의 뒷면에 적힌 284라는 숫자를 보여준다. 220과 284. 두 숫자는 우애수다. 서로 친구라는 얘기다. 평범한 숫자에다가 이런 기억을 심어놓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 기억은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영원히 남을 것이다.

80분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박사가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5761455는 1과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이며 6과 28과 496은 자신의 약수를 모두 더하면 그 자신의 숫자가 되는 완전수이며 714와 715는 서로 인접한 소수, 즉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와 그 기록을 깬 행크 에런에게서 이름을 따온 루스 아론 쌍이다. 이 숫자들은 오늘 당장 우리의 기억이 멈춘다고 해도 영원히 그 이야기들을 간직할 것이다.

그 지속되는 시간의 차이만 다를 뿐, 과거를 쉽게 망각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박사와 같은 처지다. 인생은 가혹하다. 아무리 맹세한다고 해도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청춘은 금방 지나간다.

오가와 요코는 수학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 숫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기 위해 야구를 끌어들였다. 수학박사와 파출부와 아들은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다. 그들에게 숫자는 누군가의 등번호이거나 타율이거나 통산 홈런의 숫자다. 어쩌면 신이 220과 284를 영원히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만들어놓은 것처럼, 그들도 숫자들에 자신만의 기억을 심어놓는다. 이제 죽어서 영원히 기억 같은 것은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들에 남은 그들의 기억은 영원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파출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오랫동안 귓전을 울린다. “내가 서 있는 지면을 보다 깊은 세계가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나는 놀라고 감탄한다. 그 곳에 가려면 숫자의 사슬을 타고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 언어는 무의미하고, 끝내는 내가 깊이와 높이 어느 쪽을 지향하려 하는지 구별조차 불분명해진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사슬의 끝이 진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숫자에는 영원한 진실이 담겨 있다. 순간마다 변해가는 인간이 그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상상뿐이다. 야구팬이 기록지의 숫자로 명경기의 모든 장면을 상상하듯이.

놀란 라이언의 통산 방어율로 그의 생애를 상상하듯이. 역시 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별을 상상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숫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퍽 따뜻한 소설이다.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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