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적성검사는 사주팔자 아닌 목표에 대한 방향 제시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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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이면 학교에서 간편하게 적성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부모들은 이런 검사를 잘 믿으려 들지 않는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그거 뭐 그냥 자기 맘대로 체크하면 직업이 수십 개씩 나오던데요?” “단체로 하는 싸구려 검사를 믿을 수 있나요?” “여기 저기서 해 보면 다 다르게 나오니 진짜 적성이 뭔지 모르겠어요?”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적성검사는 그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녀 교육의 참고자료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필자의 직업은 의사다. 생체신호분석(biosignal analysis)을 할 수 있는 최신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학생들에게 수백 개의 문제를 제시한 뒤 뇌파의 활성도, 심전도를 이용한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피 흐름을 통해 긴장도를 분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체에 대한 상식이 없어도 뇌파가 활성화되고 마음이 편안하고 긴장을 안 하면 적성이 의사로 나올 가능성이 커지는 방식이다. 이런 검사가 아마도 몇몇 부모와 학생에게는 신기하게 여겨졌나 보다.

지훈이를 비롯해 많은 아이는 학업 능력, 지능, 성격, 정서, 집중력, 기억력, 창의력 등 다양한 검사에 더해 적성검사를 받았다. 필자는 이를 근거로 아이들의 지적 능력, 성격적 특징, 공부 스타일 등을 통합한 후 적성검사 결과에 대비시켜 적성을 알려줬다. 그것이 마치 적성검사 하나만으로 도출된 결과인양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입소문이라는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마치 신비한 검사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한 가지 검사로 아이의 적성을 100% 알아낼 수는 없다.

적성(適性)이란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을 말한다. 이런 적성이 이르면 초등학교 4~5년이 되어야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확실한 근거를 가지려면 뇌의 성숙이 어느 정도 완성되는 중학교 2학년 즈음이 적기다.

그런데도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적성을 알려고 병원에 오신 어머니도 있다. 부모는 자녀의 적성을 가급적이면 빨리 알아내 그쪽으로 ‘밀어’ 주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적성=사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필자의 적성은 의사가 아니다. 항상 인문 혹은 사회계열이 나온다. 적성이 반드시 그 사람의 직업을 결정 짓는 요소는 아니며,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적성검사란 자녀의 사주팔자를 알아보는 도구가 아니다. 필자는 적성이란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설정해주는 제어장치라고 믿는다. 실제로 아무런 꿈도 없던 초등학교 5학년 재령이는 적성이 작가나 소설가로 나오자 “나도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될 거예요”라는 야무진 꿈을 꿀 수 있었다. 그 후 독서광이 되었고, 요즘은 영어소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로 볼 때 적성검사란 앞서 말했듯 ‘밀어 주기’를 위한 검사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왜 꼭 공부를 해야 하나요” “목표가 없어요”라고 하는 자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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