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안 된다’며 편 가르기 해선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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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용갑(73·사진) 전 의원은 절대 말을 돌려 하지 않는다. 1989년 노태우 정부 시절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며 총무처 장관직을 던졌고, 김대중 정부 때는 집권당을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몰아쳤던 그의 ‘좌충우돌’ 소신이 이번엔 이명박 정권을 향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일선 퇴진을 주장했고, 정부의 제2롯데월드 허용 방침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포용하지 못할 경우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며 “대통령은 이젠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지 말고 중심으로 나오라”고 촉구했다.

‘부자 옹호’ 인상 주는 것도 문제
-이명박 정부가 왜 인기가 없나.
“무엇보다 보수층을 실망시켰다. 보수 대표로 당선된 그가 중도실용론을 표방하고 있다. 친북 성향의 황석영 같은 사람을 비행기에 태워 데려가는 게 있을 수 있나. 화물연대 시위에서 등장한 죽창 문제도 더 단호하게 언급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가치 중에 안보와 법 질서 유지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중산층과 서민 입장에서도 자꾸 부자만 옹호한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 문제가 너무 경색되고 있는 건 아닌가.
“여기서 한발 물러나면 지금까지 지켜온 게 다 무너진다. 이 정권이 대북문제의 원칙 하나만은 제대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그의 보수 소신은 최근 신영철 대법관 사퇴 요구 파문으로 연결됐다.

“법관이 정치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인민재판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다니. 의견 표명 정도야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면 앞으로 어떤 기관을 믿겠나.”

그는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친박계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금은 3선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난 원로 정치인이다. 그에게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쓴소리를 ‘살짝’ 유도해봤다.

-보수 정권이 성공해야 박 전 대표도 대권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박 전 대표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진정으로 박 전 대표의 역할을 기대한다면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선언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통 크게 포용하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중국 제나라 환공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중용해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覇者)가 됐던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싶다.”

-친이-친박 문제가 왜 해결이 안 되고 있나.
“이 대통령이 경선 때 자기를 지지했던 사람들 위주로만 끌고 나갔다. 친이-친박은 없다고 말은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해 총선 공천 때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나야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많은 젊은 의원들이 친박이라는 이유로 당했다. 대구 공천에서 떨어진 김재원 전 의원 같은 경우 정말 아까운 사람이다.
경선 후 다시 당이 하나가 되는 리더십을 세워야지, 다음 대선에서 또 이러면 한나라당 오래 못 간다. 박 전 대표도 이 부분은 정확히 알고 있더라.”

-박 전 대표의 비협조도 재·보선 패배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동의하지 않는다. 경주를 봐라. 여론을 무시한 잘못된 공천이 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에서 원인을 찾는 게 맞다.”

-결국 분당으로 갈 것으로 보나.
“그건 박 전 대표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본인은 당의 주주라고 생각한다. 소수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당을 천막당사로 일으켜 세웠다. 대통령이 못 되면 못 됐지 당을 버리고 나가지는 않을 거다. 본인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

박근혜는 당의 주주, 절대 탈당 안 할 것
그는 전두환 정권 말기 2년여간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민심 동향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자리다. 그는 전기환·전경환씨 등 형제 문제를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직언했지만 결과적으로 막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이상득 의원 문제를 거론했다.

“이 대통령이 전임자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에겐 안됐지만 이상득 의원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 지금 모든 문제의 귀결이 이 의원에게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대미지’가 누적되고 큰 문제가 생긴다. 18대 의원 출마부터 잘못됐다. ‘동생보다 내가 정치 오래했다’는 식의 얘기는 아무 소용없는 소리다. 본인은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하겠지만 측근들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 포스코 회장 개입 의혹이 나오는 걸 보니 참 걱정스럽더라. 대통령이 결심해야 할 때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치인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주로 나누다 보니 그가 청와대 있을 때 이뤄졌던 전두환-노태우 후계 과정이 문득 궁금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고민이 많았다. 노신영 전 총리는 그를 옹호한 정치세력이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이라는 기반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쪽(노태우)으로 흘러갔던 거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도 후계 구도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갔다. 이 대통령도 잘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는 안 된다’며 니 편 내 편하면서 무리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내가 좀 불편하더
라도 내가 없는 부분을 가진 후보를 지원해주겠다’며 마음을 비우는 게 좋다.”

윤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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