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않는 기업지원 말만 그럴듯…고용안정책 약효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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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백3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와이어로프 제조업체 Y철강은 경영난으로 발생한 잉여인력 50여명을 해고하는 대신 고용유지 훈련을 시키려던 계획을 최근 백지화했다.

정부의 고용유지훈련 지원금 제도를 면밀하게 검토해봤지만 지원 액수가 너무 적은데다 훈련이 끝난 뒤 받게되는 지원금을 기다리기에는 당장 닥친 자금난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회사는 회사사정이 좋아지면 우선 이들을 재고용하기로 약속하고 50명을 정리해고하기로 입장을 다시 정리했다.

정부는 올해초 고용보험기금에서 4천4백71억원을 마련, 해고회피 노력을 하는 기업에 이 자금을 지원해 55만명의 근로자를 실업 공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지원책은 ▶휴업수당 지원금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 ▶고용유지훈련 지원금 ▶근로자 사외파견 지원금 ▶인력재배치 지원금 등으로, 이를 통해 고용을 유지할 경우 훈련비용 일부와 휴업수당, 지급 임금의 절반까지 6개월 동안 지원한다는 내용. 그러나 이같은 지원책이 기업 입장에서 보면 '빛 좋은 개살구' 라는 게 일선 기업들의 시각이다.

결국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의 종업원 해고 회피 노력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은 계속 겉돌고 있다. 실제로 고용유지훈련은 28일 현재 52개 업체에서 2천2백여명에 대해서만 실시해 목표 (8만8천명) 의 3%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근로시간단축 지원금을 받아 고용을 유지한 기업도 올들어 29개 업체에 불과하고 인력재배치 지원금은 단 1건 (75명) , 근로자 사외파견 지원금은 아예 지원 실적이 전무한 실정이다. 휴업수당 지원금만 6백89개 업체가 신청,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도 고용효과가 적은 소규모 기업에 한정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정부의 지원책이 기업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은 지원 내용이 기업이 처한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 한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주력 업종 위주로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를 파견받을 만큼 여력있는 계열사가 어디 있겠느냐" 며 "근로자 사외파견 지원금이나 인력재배치 지원금은 이름만 그럴싸하지 현실적으로 실효가 없는 제도" 라고 비판했다.

업종을 전환한 뒤 기존 근로자의 60% 이상을 계속 고용하라는 인력재배치 지원금 조건은 충족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경총 김영배 (金榮培) 상무는 "2~3년 안에 경기회복을 전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6개월에 그치는 정부 지원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라는 것은 언발에 오줌 누는 격" 이라고 잘라 말한다.

노동연구원 선한승 (宣翰承) 연구조정실장도 "기업의 해고회피 노력을 지원하는 것은 적극적인 실업대책인 만큼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는 지원 규모나 기간 등을 늘려 현실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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