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씨 5년만의 창작집 '유리구두'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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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8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았던 사람의 90년대 삶의 방식은 어떤 것인가. '칼날과 사랑' 이후 5년만에 소설집 '유리구두' (창작과 비평사刊) 를 펴낸 소설가 김인숙 (35) 은 80년대 세계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로 90년대 후반의 세상을 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 시기에는 (…) 바칠 열정이 있었다. (…) 그러나 그것은 이제 그들에게 추억이었다. 어느날 아침 눈 떠보니 그들은 추억 밖의 세상에 던져져 있었다." ( '유리 구두' 중) 그가 이번에 내놓은 9편의 신작단편에서도 80년대에 대한 90년대식 되새김질이 관통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만 그 시대에 대한 회한, 또는 그 시대를 세상의 한 구석으로 몰아가는 오늘의 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90년대를 살아가기 위한 의식적인 몸부림을 강하게 비친다.

"나 역시 세상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세상뿐만이 아니라 아무 것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 " ( '그 여자의 자전거' 중) 그의 소설들은 스스로에게 던진 이런 의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자신의 갈등에 대한 끝없는 고백과 좌절이 흐르는가 하면 그 시대의 정신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간절한 심정 또한 만만치 않다.

"지금도 여전히 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무언가를 믿고 무언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 있지 않겠느냐. " ( '그 여자의 자전거' 중) 그런 의미에서 "창밖의 꽃이 나를 참고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저 창을 열고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설령 오늘 창밖에 궂은 비가 내리고 있더라도…" 라는 작가의 말은 묘한 여운을 준다.

"90년대를 살아가려면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바꾸어야 한다" 는 주변의 소리에 귀기울이면서도 작가는 80년대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수없이 많은 소설더미 위에 자신의 소설을 더 얹어 놓으려는 것은 그것이 세상을 빛나게 하리라는 기대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바다에서' 중)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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