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은행들 '애국심 예금'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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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금융계에도 소비자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국제통화기금 (IMF) 상품' 바람이 불고 있다.'당신의 예금이 실업자에게 희망을' 'IMF경제위기 극복 저축' .이렇게 이웃과 나라사랑을 앞에 내걸고 판매하는 상품들이다.

통장엔 태극기 그림도 등장했다.공익성 금융상품 유행은 IMF관리체제 이후 발빠른 제조업체들이 시대의 어려움을 역이용, '애국심 광고' 를 주요 마케팅전략으로 삼았던 것에 비하면 뒤늦은 감도 있다.

서울은행은 지난 1일 '실업기금마련 정기예금' 을 내놓았다.예금이 모이면 총액의 0.5%만큼을 은행이 부담해 실업기금으로 조성한다.

이 예금에 6천만원을 맡긴 김화자 (金花子.73) 씨는 "나도 직장인 아들을 둔 어머니" 라며 "나중에 내 자식도 실직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예금했다" 고 말했다.

서울은행은 16일 신복영 (申復泳) 행장이 직접 정부종합청사를 방문, 김종필 (金鍾泌) 국무총리서리 의 예금을 받아오기도 했다.상업은행도 '한사랑 근로자플러스 통장' 을 개발했다.

이자에서 세금을 떼고난 액수의 10%만큼을 은행이 실업대책기금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출연한다.'IMF 경제회생 수출지원통장' 을 내놓은 한일은행은 지난 1일 탤런트 박상원, 개그맨 조정현, 정덕구 (鄭德龜) 재경부차관 등 각계 인사를 본점에 초청, 거창한 발매식을 가졌다.

한일은행은 이 통장을 통해 모인 자금을 중소수출기업에 우선적으로 지원한다고 밝혔다.'수출만이 우리의 살길, 3천만 1인 1천달러 저축으로 수출위해 앞장섭시다' 는 구호도 내걸었다.

이밖에 제일은행은 '실직자 후원기금 통장' 을, 평화은행은 '실직근로자 지원통장' 을,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사랑통장' 을 판매중이다.이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공익상품 바람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우선 점점 더 많은 예금자들이 금리조건 등 실익을 철저히 따지고 금융기관을 신뢰할 수 있어야 돈을 맡기는 추세에서 나라사랑.이웃사랑 등의 구호가 얼마나 먹혀들겠느냐는 것이다.

은행들이 수익성 제고 등 본연의 업무를 뒷전으로 하고 경비가 많이 드는 일과성 신상품 개발과 캠페인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자금압박으로 온갖 경비를 줄이는 은행이 자체 자금을 출연해 실업자를 도울 여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며 "철저한 상업주의에 입각해 은행경영을 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가경제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 이라고 꼬집었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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