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해씨 구속' 물 건너가나…검찰 영장청구 미적미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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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권영해 (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구속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을 두고 검찰 주변에서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權씨는 '북풍공작' 의 최고 책임자로 20일 소환될 때만 해도 바로 구속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할복사건 이후 그의 빠른 회복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 청구가 10일 이상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주변에서는 權씨의 건강상태를 고려했다기 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우선 權씨가 검찰 또는 여권과 불구속을 조건으로 알고 있는 비밀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모종의 합의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權씨는 소환 직전인 지난 19일만 해도 "모든 문제를 내가 책임지겠다.

아랫사람에 대해선 선처해주길 바란다" 며 구속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이대성 (李大成.구속중) 전 해외조정실장 등 재미동포 윤홍준 (尹泓俊) 씨 기자회견을 주도한 실무자들이 모두 구속돼 지시를 내린 당사자도 구속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權씨는 21일 할복 전에 오제도 (吳制道) 변호사를 만나 "내가 들은 얘기를 모두 털어 놓으면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 고 발언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말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선 權씨가 북한에 접근했던 여야 정치권의 공작내용을 모두 갖고 있어 이 파일이 공개되면 엄청난 충격이 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權씨 처리에 대한 검찰의 입장도 계속 바뀌었다.

검찰은 權씨의 할복사건 직후엔 "의사와 건강상태를 협의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 며 영장청구는 기정사실화한 채 시기를 고르는 입장이었다.그러나 여야의 대북 접촉공작을 담은 '권영해 파일' 이 있다는 소문이 나돈 이후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매우 신중해졌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전쟁은 이미 끝났다.전쟁이 진행중인 상태에서는 보이는 적을 무조건 섬멸해야 되지만 전쟁이 끝나면 다르다" 며 權씨에 대한 구속방침을 유보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검찰 주변에선 權씨가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 고 말한데 대해 불구속을 끌어내기 위해 검찰을 '협박' 하는 행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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