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시스템개혁으로부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를 4룡 (龍) 이라 불렀었다.

경제가 치솟기를 용이 하늘을 날듯 한다 해서 붙여졌던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국만이 국제통화기금 (IMF) 신세를 지게 됐다.

무엇 때문일까.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지난 2일자 신문에서 한국이 정치.경제분야에서 법적 시스템이 취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열번 옳은 말이다.

기업이 그러하듯이 국가도 경영의 대상이다.

국가경영이란 무엇인가.

국가의 자원과 국민들의 능력을 활용해 국가발전이란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기술이다.

그 기술의 핵심에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이 있는 국가는 선진국이고 시스템이 없는 국가는 후진국이다.

그간 우리는 시스템의 뒷받침 없이 선진국이라도 된 양 흥청거리다가 갑자기 제실력이 드러났다.

기업의 경쟁력이나 국가의 국력 수준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시스템의 효과와 관련된 한 예를 들어보자. 한국도 대만도 비슷한 시기에 영수증 주고받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은 실패했고 대만은 성공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대만 사람들은 국민의식 수준이 높고 한국사람들은 낮아서였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매사 그런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 탓이다.

대만정부는 모든 영수증에 복권번호를 기록했다.

영수증 복권제라는 시스템이다.

그리고는 매달 한차례씩 복권추첨을 하고 연말에는 그 해에 발행된 모든 복권을 대상으로 다시 추첨을 했다.

당첨자에게 적게는 천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즉시 지급했다.

국민들은 앞다퉈 영수증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무자료거래에 따른 기업부조리가 뿌리뽑혔다.

정부가 실시한 조그마한 시스템이 투명한 거래관행을 낳게 했다.

우리가 실시했던 금융실명제가 내용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너무 거창하고 요란해서 실패한 것이 아닐까. 국민이 감당할 만한 작은 시스템부터 시작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시스템 효과에 대한 다른 예로 은행객장을 생각해 보자. 지난날 은행객장에는 질서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질서가 있다.

국민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대기번호표' 라는 시스템 덕분이다.

김영삼 (金泳三) 정권의 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5년간 개혁 개혁하고 노래부르듯이 했는데 왜 개혁이 개판으로 끝났는가.

시스템에 대한 무지 탓이다.

사정 (司正) 작업의 예를 들어보자.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숱한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아들까지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제는 개인 차원에서의 사정이었지 부패가 일어나는 구조에 대한 시스템을 고치지 못했다.

그 개인들도 미운 사람 손봐주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

줄줄이 잡혀 들어갔던 사람들이 진작에 풀려나서는 벌맞은 곰처럼 길길이 뛰고들 있다.

모양새가 참으로 좋지 않다.

잡으려면 확실하게 잡든지 아니면 시스템을 고쳐 구조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건수만 올리다 이제는 자신들이 잡혀들게 됐다.

그래도 그간에 이것 저것 챙겨둔 사람들이야 IMF가 오고 가도 사는 일에 지장이 없겠지만 문제는 우리네 서민들이다.

'죽는 건 조조군사' 란 말이 있듯이 서민들은 IMF시대를 살아가기가 참으로 벅차다.

이제 새 정부가 시작됐다.

새 일꾼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정치보복하는 일, 개인 잡는 일은 제발 삼가달라는 말이다.

나라를 위해서고 또 자신들을 위해서다.

김영삼정권 같은 정권이 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에서다.

벌써 매스컴에서 '정치보복이다' '아니다' 는 시비가 거듭되고 있다.

사실의 가부를 불문하고 그런 말이 나오고 있는 자체가 불길하고 지겹다.

제발 시스템을 고치는 일에서 국가경영을 시작해 주기 바란다.

손봐줄 사람이 있거든 개인들끼리 만나 해결하고 나라 일은 시스템 개혁으로 나가자. 마지막으로 한마디 "시스템 개혁하여 선진조국 이룩하자!"

김진홍〈목사·두레마을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