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재벌개혁은 법테두리 안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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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를 초래한 주범중 하나로 재벌들이 지목되면서 신정부의 향후 대기업 정책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있다.

대기업 정책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유임된 전윤철 (田允喆) 위원장은 11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재벌 구조조정은 아이디어가 아닌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해야한다" 고 말문을 열었다.

- 새 정부는 경제이념으로 '민주적 시장경제' 를 내세우고 있읍니다. 田위원장께서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혹자는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인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나가는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하지만 전 과거 오너의 독단에 의한 기업의 의사결정등 우리 경제의 비민주적 구조를 타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외감사제도 도입하고 소액주주권한도 강화해서 경제운용에 다양한 목소리들을 반영, '의사결정의 민주화' 를 이룩한다는 것이죠."

- 그렇다면 그같은 해석에 따라 공정위의 정책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공정위가 제도와 틀안에서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한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습니다. 재벌문제만해도 세제며 금융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공정위가 굳이 출자총액제한이며 상호지급보증 규제를 할 필요도 없었겠죠. 그게 안됐으니까 그런 제재를 할 수 밖에 없었고요. "

- 말씀하신 것처럼 법과 제도를 통해서 비민주적이고 국제기준에 맞지않았던 재벌의 경영관행을 뜯어고칠 수 있다면 굳이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최근 '빅딜' 이니 '3~6개 주력기업' 이니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와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앞으로 재벌개혁은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온 아이디어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법과 제도의 틀안에서 해나갈 것입니다. '3~6개 기업' 운운하는 발언이 나오게된 것은 그간 재벌 총수들이 계열기업을 많이 갖고있는게 큰 자랑이나 되는 듯 '도덕적 해이' 에 젖어 있었던 관행이 심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재벌도 핵심역량 (Core Competence) 을 선정하지않고는 살아남기 힘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정부가 주도해선 안돼요.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정부 관료들이 책상앞에 앉아서 기업에 대해 '이 업종이 경쟁력이 있으니 해라 말라' 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까지나 기업이 생존차원에서 알아서할 문제입니다.

정부는 간접적으로 유도할 뿐이죠. 국내의 91년 주력업체제도, 93년 업종전문화제도나 60년대 프랑스의 이른바 '내셔널 챔피언' 제도등 국가가 직접 개입했던 기업구조조정이 모두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 핵심역량을 강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독과점이 심화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십니까. "선진국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기업결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독과점을 막기위해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경우가 1개사 시장점유율이 50%일 때인 반면 일본은 25%, 독일은 33%다) .또 국내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력을 키우지않은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고요. 하지만 비록 1백% 독점이 된다하더라도 경쟁제한의 폐해보다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기업결합을 허용하도록 기준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생각입니다."

- 예컨대 자동차산업처럼 극도의 독점 가능성이 있는 분야도 말입니까.

"미국의 경우 크라이슬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GM이나 포드와 합병을 시키느냐, 아니면 지원을 해주느냐로 고민했었죠. 하지만 다시 지원해 살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이 말로 대답을 대신하죠. "

- 최근 은행이 '재무구조개선협정' 을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주도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은행들이 기업비밀에 속하는 협정내용을 공개하겠다고 해서 말들이 많은데요. "은행이 채권자로서 역할을 다해야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은행도 구조조정을 해야하는 개혁대상인데다 과연 국내 은행들이 그같은 협정을 맺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군요. 앞으로 공정위는 은행의 구조조정이나 기업과의 협정 체결과정에서의 부당공동행위등에 대해 가능한 제 몫을 다할 것입니다.

또 기업관련 정보의 공개와 관련해선 영업비밀을 제외하곤 알려져야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공시제도를 강화하도록 재정경제부에 건의했어요. "

만난사람=박태욱 경제1부장·정리 = 신예리 기자·사진=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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