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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 자본주의에 빠진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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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최근 미국 정부가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는 정실 자본주의가 워싱턴 정가마저 장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테스트 결과가 발표 몇 주 전부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은행들과 결과를 놓고 타협을 벌인 것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테스트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와 미국 정부는 은행의 부실 규모가 공개되면 많은 대형 은행이 바로 파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나서야 했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의장을 맡고 있는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은행 국유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 국유화로 인해 ‘사회주의 정부’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은행이 국유화되면 정부는 경영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해고할 수 있다. 이를 두려워하는 월스트리트 거물들은 자신들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정부를 설득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금융위기라는 불을 지른 방화범이 아니라 오히려 화재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은행 자산 평가가 잘못돼 부당한 처벌을 받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월스트리트 문화에 친숙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나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들의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미국 증권시장이 지난해 겨울 바닥을 친 것은 미국 정부가 더 이상의 은행 파산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믿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미국 은행의 정확한 시장 가치를 알려주길 원한다. 또한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와는 달리 다시 기업윤리 강화 정책을 펼쳐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납세자들도 은행을 되살리기 위해 이미 많은 세금을 지원했기에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투명하게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공적 자금이 월스트리트의 보너스 잔치 등 공익과는 무관한 곳에 사용됐다. 그런데 ‘스트레스 테스트’에선 이런 지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와 월스트리트가 한패가 된 게 아닌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부와 함께 정직하지 못한 일을 꾸미는 공범이 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처럼 정실 자본주의는 제3세계에서 미국으로 전파됐다. 중국이 갈수록 개발도상국에 믿을 만한 롤모델로 인식되는 반면 정실 자본주의에 빠진 미국은 위선과 이중 잣대의 상징으로 비치는 게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세상이다.

쇼신밍 전 옥스퍼드대·프린스턴대 객원연구원
정리=이승호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