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갈래 찢긴 죽창 살 … 헬멧 뚫고 얼굴로 쑥쑥 들어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16일 오후 6시 대전시 법동 동부경찰서 앞 도로. 화물연대 집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7000여 명과 폴리스라인을 친 경찰 5000여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16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전시 법동 동부경찰서 앞 도로에서 죽봉을 들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시위대와 대치한 경찰 병력의 대부분은 서울경찰청 기동본부 소속 전·의경들이었다. 최일선엔 15중대 대원 90여 명이 배치됐다. 고(故) 박종태 전 화물연대 광주 지회장의 영정사진을 앞세운 100여 명이 옆으로 비키고 대나무 봉에 검은 깃발을 단 1000여 개의 만장이 전면에 섰다. 이때 시위대가 순식간에 만장을 대나무 봉에서 떼어내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대나무 끝을 땅바닥에 내리치고 발로 짓이기자 뾰족한 수십 갈래의 살로 찢어졌다.

시위대는 이렇게 만들어진 죽창으로 대원들의 머리를 내리쳤다. 대원들이 방패를 쳐들었지만 죽창에 밀려 뒤로 휘청거렸다. 노출된 하반신을 죽창이 찌르고 들어왔다. 방패를 들었던 노지환(21) 상경은 죽창에 허벅지와 손목을 맞고 부상을 당했다. 그는 “보호대를 입었어도 맨살을 돌에 맞은 것처럼 아팠다”고 말했다. 폭력 시위가 시작되고 몇 분 후 노 상경 바로 옆 강호경(21) 일경이 방패로 아래쪽을 막자 얼굴로 죽창이 날아들었다. 죽창의 살은 헬멧의 안면보호 격자철망 사이로 박혔다. 이내 강 일경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강 일경은 각막이 손상돼 인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뒤 입원 중이다.

대치는 40여 분간 계속됐다. 김원기(22) 수경 등 맨 앞쪽에 있던 대원들은 “4.5㎏의 방패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계속 막으려 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했다. 죽창은 방패로 막지 못하는 위·아래·옆으로 날아왔다. 결국 후퇴 명령이 떨어졌지만 죽창 세례는 계속됐다. 뒤쪽에서도 길이가 긴 죽창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이날 104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대부분 죽창에 의해서였고 죽창에 얼굴이 찔린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대원들을 지휘한 이완형 중대장은 “돌과 화염병은 몸을 움직여 피할 수 있고 쇠파이프는 길이가 짧아 진압봉으로 맞설 수 있다. 하지만 죽창 시위대는 촘촘하게 대열을 짜 공격해 오는 데다 (죽창이) 길어서 다가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기동본부는 18일부터 죽창시위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했다.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평화적인 의도로 시작된 준법 시위가 폭력 사태로 변질된 것은 경찰이 일방적으로 토끼몰이식 진압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나무 봉은 만장을 제작하기 위해 들여온 것일 뿐”이라며 “경찰이 물대포 등으로 강경진압에 나서는 바람에 분노한 시위대가 우발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