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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콤플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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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 가지 유행이 너무 오래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너무 오랫동안 유행한다. 인간들이 옹졸해서 한 아이템에 이렇게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창의력 배양에 좋지 않은 현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후의 미술 운동은 모두 그 명성에 반항하는, 저항하는, 개인적인 몸부림이었다. 그 이콘을 깨기 위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같은 걸 꿈꾸면서 수많은 화가들이 그런 저항의식이 깔려 있는지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림 속에, 밑칠처럼, 분노와 알 수 없는 반항심을 뭉개면서 그려낸 저항이었다.

고3 때 나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서 살았다. 교실에서 밤 새우기도 하면서 죽기살기로 공부하던 어느 날, 일반사회 선생님이 "너희들 공부 많이 해서 힘들지. 웃겨서 피로를 풀어 줄게"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도화 시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말을 그리라고 하는데 아무리 그려도 말이 안 그려져서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릴 무렵 '이것은 말이다' 하고 도화지에 써서 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런데 나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일그러졌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림 그리는 일에서도 고통으로 눌리는구나. 기가 막힌다.

그로부터 15년 후 나는 화가가 돼 있었다. 물론 무명화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그 선생님이 생각났다. 당장 그리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고통을 부숴버리는 그림, 자유의 원형을 탈환하는 그림, 정신을 억눌러온 돌덩이를 분쇄해 내는 그림. 자유선언으로서의 그림. 카리스마에 대한 반항으로서의 그림,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그림.

그렇다. 선생님을 괴롭힌 것이 다빈치 콤플렉스다. 다빈치 이후에 태어난 자를 짓누르는, 다빈치의 명성이 지배하는 사회에 태어난 자를 괴롭히는 정신장애.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 뒤 되돌아 와서 그림을 그렸다. 말을 아무렇게나 그리고. 하나도 잘 그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왼손으로 그리거나, 빨간색으로 칠하고 '이것은 말이다'하고 연필로 캔버스에 쓰고. 그런 그림들을 발표했다.

반응은? 뻔하지. 또라이…사이코….

그래도 줄기차게 그런 그림을, 그 그림을 다시 그리고 또다시 그리면서 그림으로서의 문화운동, 저항운동, 고정관념을 깨는 운동,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다빈치 명성 깨기 운동을 혼자서 줄기차게 끈질기게 진행해 간다. 그것이 현대 화가들의 할 일인가? 이다.

지난핸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무슨 큰 음모를 밝혀내듯이 다빈치의 그림-그 시절에 대두한 세밀화, 일종의 해부도, 의학적인 정보그림 같은 걸 핀홀 카메라의 원리와 그 발견과 지리적인 동시성을 갈파한 책을 써서 그 잘나가는 영국 화가가 다빈치 콤플렉스를 서양인답게 논리적으로 검증적으로 학자들처럼 언어로 풀이해 냈다.

나는 삼십년쯤 전에 화가답게 그림으로, 오로지 화가일 뿐인 방법으로, 오직 감각.시각으로서만 저항하는 화가답게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것이 '이것은 말이다' 그림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세잔 그림처럼 안 그려지면 못 그렸다고 그림을 손으로 가린다. 그들과 비슷하게 그려지면 내심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림을 내민다. 이건 다빈치 콤플렉스를 넘어서 다빈치 중독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머리부터 해방시킨 뒤에 붓을 들고 물감뚜껑을 열어야 한다. 그림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적인 표현일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완벽한 시각왕국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안에서 완전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다. 다빈치는 해부도에 매혹된 어떤 촌놈일 뿐이다.

김점선 화가

◇약력 : 이화여대 졸, 홍익대 서양화 석사, 개인전 36회, 저서로 '10센티 미술''나는 성인용이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