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포커스]사랑고민 간편처방 '러브펜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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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랑에 관한 작은 '미신' 들. 성냥개비 두개를 마주 붙여 끝까지 타면 사랑이 이뤄진다, 그 사람 이름을 쓴 종이를 베갯속에 넣고 잔다. 가을이면 낙엽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보고 첫눈이 올 때면 손톱 끝에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봉숭아물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춘기 시절 진한 짝사랑의 열병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픽 웃음을 지을 것이다.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테니까.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사랑의 의미가 담기면 거룩한 성물 (聖物) 이 되는 법 아닐까. 그런데 최근 중고생들 사이엔 '러브 펜 (love pen)' 이 유행이다. 그런 이름의 상품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속이 들여다 보이는 펜을 골라 심에다가 '러브 펜이에요. 만지지 마세요' 란 글을 쓴 종이로 감싼다.

그 펜을 다 쓸 때까지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거다. 사랑을 끝내는 방법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펜을 빌려주면 그걸로 간직했던 사랑의 느낌은 끝. 그런가 하면 펜이란 펜은 모두 러브 펜이라고 써붙인 실속파도 종종 등장한다.

빌려줘서 잃어버릴까봐서다. 값비싼 펜일 경우엔 더하다. 참 현대적이란 생각이 든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간절히 사랑을 희구했던 그 옛날의 가슴 떨림에 비해서는 말이다. 설마 요즘 사랑이 펜 한자루의 값어치 수준으로 평가절하된 것을 의미하진 않겠지. 가슴이 조금 허전하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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